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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20억원 없으면 군수 선거 나오지 마라”라고.
평생 공직에만 있던 나는 그런 돈도 없지만 돈이 있다고 해도 그렇게 쓰지 않겠다고 대답했다.
군수 선거에 20억원을 쓰면 본전을 뽑기 위해 4년 내내 부정한 돈에 손을 대야한다. 군수는 제사 보다는 젯밥에 더 신경을 쓰게 된다.
돈 되는 일에만 관심을 가지면서 마음은 교도소 담장 위를 걷게 된다.
영덕에서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사람도 말했다. “영덕에서는 선거 운동할 필요 없다, 야당 공천만 받으면 무조건 당선 된다” “선거자금 있다면 모두 공천 받는데 써라. 공천만 받으면 돈은 들어온다”고 했다.
공천만 받으면 당선되니 군수는 군민보다 국회의원 한 사람에게 더 충성한다. 공천 받은 후 이권과 특혜를 바라고 줄을 선 사람들을 먼저 챙겨야 한다. 공정과 청렴은 물 건너 간다.
영덕은 향후 30년내 사라질 시군중 전국 10위 이내이다. 인구는 해마다 줄고 경제는 계속 추락하고 있다. 청렴도는 5년 연속 전국 최하위권이다.
일하는 머슴을 뽑는데 실력이나 미래 비젼 보다는 공천과 돈이 좌우되니모든 것이 내리막 길을 걸을 수 밖에 없다.
대학 다닐 때 어머니는 늘 내가 데모하는데 앞장서지 말라고 당부했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 시류에 따라 물 흐르는 대로 바람 부는 대로 살아라”라고 가르치셨다. 군수 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하려고 하자 어머니는 역시 반대하셨다. 영덕에서 공천 받지 않고 군수 선거에 나서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치기’라고 하셨다.
남이 가지 않는 길, 특히 기득권에 도전한다는 것은 설령 그것이 옳은 길이라 할지라도 어머니는 말리셨다. 실패했을 때 겪게 되는 고통과 좌절을 아들보다 더 멀리 내다보고 있었다.
나는 정치학 책에서 ‘원칙 있는 승리’가 가장 좋지만 그게 어렵다면 ‘원칙 있는 패배’가 ‘원칙 없는 승리’ 보다 낫다고 배웠다.
설혹 지는 길을 택하더라도 앞으로 가는 정치를 해야 한다고 배웠다.
그러나 선거판에서 그런 말을 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겨야만 한다고 핏대를 높이고 있었다.
두 번의 선거에서 나는 41%와 42%의 득표를 하고 낙선했다.
‘원칙 있는 패배’를 아름답다고 이야기 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나는 선거 출마를 결심하면서 바다까지 갔다가 자기가 태어난 강으로 돌아와 제 목숨을 바치는 은어를 생각했다.
진짜 실력으로 승부하는 사회, 돈을 뿌리고 본전을 찾기 위해 부정을 저르지 않아도 되는 사회. 선거에 빚 진게 없어 도와준 사람에게 끌려 다니지 않는 사회, 1%의 기득권층이 아니라 99%의 군민들이 진정한 주인으로 대접받는 사회를 만들고 싶었다.
인생이 힘들 때 마다 나는 현실에서는 패배했지만 역사에서 승리했던 위인들을 찾는다. 역사 속의 위인들이 현실에서 이기고 역사에서 잊혀 지는 길을 선택했다면 우리의 역사책은 지금보다 훨씬 가벼워졌을 것이다.
언젠가 우리 모두 영덕에서 사라지겠지만 옳은 길에 대한 신념과 끝없는 도전 정신만은 강을 거슬러 온 은어가 남긴 알 속의 DNA 처럼 남아 영원히 이어지리라 굳게 믿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