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몽고반점'때부터 한강 작가를 접했다. '채식주의자'가 나왔을 때는 상처인 줄도 모르고 상처를 안고 살아온 영혜에게 공감하며 상처 입은 영혼이 자기 상처를 인지하면서 들어가게 된 동굴의 시간에 블랙홀처럼 빠져들었다. 그리고 며칠 전 '작별하지 않는다'는 제주 4.3사건 전반을 다룬 이야기로 제주특별자치도 모 인사로부터 친히 보내온 선물이다. 한강의 노벨상 수상과 더불어 여러가지 생각 끝에 보내신 것 같아 한달음에 읽었다. 시작은 성근 눈이 내리는 날 묘지 앞에서 일어난 꿈속에서 출발한다. 제주 4.3의 아픈 비극과 함께 밀도있는 사건기록과 제주도, 눈, 고통, 피, 바다, 나무, 사랑 등 한강 특유의 신체반응 묘사가 압도적이다.
노벨상은 한강의 기적이다. 대한민국의 기적인 것이다. 정치적, 역사적, 종교적 이념을 벗어나 우리나라 전체가 분명히 축하해야 할 큰 상이다. 대한민국 국격을 높인 상이고 나아가 인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준 계기가 되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아시아 여성으로서는 처음이라고 하니 얼마나 감격스러운가. 더욱더 놀란 것은 노벨상이 확정되고 난 후 한강 작가의 태도에서다. 우크라이나에서 억울하게 죽어간 영혼들을 두고 잔칫집을 만들 수 없다며 기자회견도 하지 않고 아들과 차를 마시며 조용히 축하하고 싶다는 작가이니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
융의 분석심리학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것 중 하나가 '자아팽창'이다. 흔히 성공한 사람들에게서 문제가 되는 것인데 자기를 그 업적과 혼동하는 것이다. 자아팽창은 쉽게 자기 기만을 끌어들인다. 내가 이룬 것이 '나'라는 생각, 내가 받고있는 사회적인 평가가 '나'라는 생각은 업적을 쌓기 위해 노력하는 에너지가 될 수는 있지만, 내적으로는 자기성찰을 방해하는 에너지가 된다.
아울러 외적으로는 비교 평가하는 에너지가 되어 시기와 질투를 넘어 공동체의 갈등을 조장한다. 그러나 한강 작가는 노벨문학상과 상관없이 자기 스타일대로 살아가고자 하는 모습을 보면서 상처입은 영혼에 집중하는 모습을 또 한 번 보았다. 그것이 한강의 일상이다. 한강의 매력이며 질긴 뿌리인 것이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2023 국민독서실태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성인 중 일반 도서를 한 권이라도 읽은 사람은 43.0%에 그쳤다. 이 조사가 시작된 1994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진 것인데 이번 '한강 신드롬'은 얼어 붙어가던 인문학계에 한층 생기를 불어넣고 있다. 한강 작가의 수상 이후 시민들 사이에서 글쓰기 바람이 불고, 독서 모임이나 역사 공부 모임 등이 늘어나는 등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분위기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는 글쓰기 인증을 하거나 독서 또는 필사한 책을 찍어 올리는 등 자신의 독서 경험을 나누는 활동이 활발하다. 한강의 책은 노벨문학상 수상 엿새 만에 100만부가 넘게 팔렸다고 한다. 교보문고, 예스24, 알라딘에 따르면 지난 16일 오전 9시 기준 종이책만 103만 2000부, 전자책은 최소 7만부 이상 팔린 것으로 집계되었다. 한강 작가의 책을 찍어낸 인쇄소들은 때아닌 추가 근무에 '행복한 비명'을 지르기도 했다.
필자가 동네 서점가를 자주 찾다보니 느낌적으로 "한국 문학의 새로운 도약이 될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정부도 한강 신드롬이 이어지도록 힘쓸 예정이라고 한다. "No Pain No Gain"이라고 어느 것이든 고통 없이는 해낼 수 없다. 시와 수필, 소설, 동화, 편지, 일기 등 우리네 삶이 인문학이고 예술인 것이다. 이번 한강 작가의 노벨상을 계기로 깊어가는 가을날, 인문학에 심취해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