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같은 봉황새는 하늘을 날다 날개가 아프거나 잠이 쏟아지면 오직“거대한 오동나무만 찾아서 그 위에 구름을 깔고 쉰다.”고 한다. 또한 “천하가 태평할 때에만 나타나 이 새를 볼 수 있다.”하였다. 한번 보기가 어려운 새이다. 그래서 10년에 한번 올 정도의 행운을 잡으면 사람들은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 “봉(鳳) 잡았다.”한다.
이렇게 보기 어려운 봉황새가 옥계(玉溪)에 앉아있으니 이곳에는 있어도 보이지 않는 거대한 오동나무가 있는 것인가? 봉황새가 머물고있는 지금이 태평성대(太平聖代)인가? 이곳을 오고 가고 하는 사람들은 항상 이런 것을 자기에게 묻고 자기 스스로가 답을 하고 있지만 누구도 정답은 모르고 있다.
아무튼 봉황새는 전설상의 길조(吉鳥)로 알려져 있지만 실물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천하가 태평한 적이 없었던 모양이다. 이런 봉황새가 옥계(玉溪)에 날아와 아무도 보지도 못한 벼슬(鳳官)을 세우고 앉자 오고 가는 나그네들을 내려다보고 있다. 아마 봉황새가 앉은 옥계(玉溪)는 전체가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는 거대한 오동나무는 아닌지....,그렇다. 앉아 쉬고 있는 봉황새가 만약 하늘 높이 날아오르는 날이 있다면 그때는 우리 모두는 봉황새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이때일지, 지금부터 천년 훗날 일지는 누구도 모르겠지만.......
그렇지만 예전부터 이곳에서 전해오는 이야기로는 “봉황새가 앉아 있는 옥계(玉溪)는 바로 오동(梧桐)나무와 같은 형국(形局)이므로 옥계(玉溪)의 곳곳을 정성스럽게 가꾸어 진짜 오동나무로 바꿀 수 있다면 벼슬을 늘어뜨리고 앉아있는 봉황새를 한 번만이라도 날아오를 수 있게 할 수 있다면 영덕은 지금까지와 완전히 다른 세계가 될 것이다.”라는 이야기가 있다. 세월이 더 흘러 봉황새의 눈이 침침하고 어둡게 되기 전에 봉황새가 반드시 날아오르도록 해야 하는데......
또한 봉황새는 곧 훌륭한 인물을 말하는데 아마 이러한 인물이 우리 지역에서 배출이 되어 옥계(玉溪)의 이름과 영덕의 이름을 더욱 빛내주기를 바라던 요순(堯舜)적 백성(百姓)들의 순수한 마음이 이곳에 모여 하나의 상징으로 나타난 것일 것이다.
다음은 봉관암(鳳官巖)을 읊은 침류재 손성을(孫星乙) 선생의 한 수의 시이다.
봉황의 덕(德)은 그대로지만 세상의 덕은 이미 쇠퇴하여 鳳德非衰世已衰
천 길 낭떠러지에 날아와 옥계의 물가에 앉았는데 飛來千仞下溪湄
관직에 오른 것처럼 규율에 익숙한 완고한 모습으로 있으니 紀官以浚成頑質
원앙과 백로들이 모욕하며 웃는 것도 당연하다네. 侮笑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