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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금요칼럼]봄이 오는 길목에서

고향신문 기자 입력 2021.03.29 16:02 수정 2021.03.29 16:03

이 운 락 칼럼위원 

얼어붙은 강이 녹아 흐르고, 길섶에는 제법 자란 풀들이 가지런한 모습에서 봄이 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두꺼운 패딩을 껴입고, 주머니에 깊숙이 손을 넣고 총총 걸음을 재촉했던 날들이 지나가고 있다. 앙상한 가지 끝에 조금씩 푸른 기운이 맺혀 잔뜩 흐린 하늘과 대비를 이루고 있다. 창밖 먼 곳에는 깃발이 바람에 나부끼고, 인적이 드문 골목에 세워진 차는 소설 속의 풍경처럼 스산한 기운을 뿜고 있다. 모처럼 만난 지인의 얼굴에도 웃음과 걱정이 동반된 뉘앙스를 풍기고 있다.

 

생각이 생각으로 끝나면 결과가 없기에 자신의 생각을 행동으로 옮겨야 하는 세상에 우리 모두는 살고 있는 것이다. 필자도 생각과 느낌이 정리가 잘 되지 않을 때는 졸작 자작시를 시집에서 찾아 다시 읽곤 한다. 「살아 있는 날들의 슬픔」이라는 제목하의 글이 눈에 들어온다. ‘날마다 숨을 쉬고 있다는 것은/살아 있다는 느낌표를 찍는 것이다./마침표 대신 쉼표를 섞어가면서/ 호흡을 가다듬고 허리를 펴면서/ 천천히 걸어가는 것이다.’/라는 시행이 새삼 가슴을 아리게 한다.

 

서울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의 원룸 집을 나서면서 마음은 편치 않았다. 반지하 원룸을 구한 딸이 아빠/엄마를 배웅한다고 언덕 위 원룸 문간에서 손을 흔들 때까지는 참았다. 자동차가 고속도로에 들어서면서 아내가 먼저 눈시울을 적신다. 30년 이상 교직생활을 했지만, 자식들에게 반지하 원룸 한 칸을 얻어주는 것이 전부라는 생각에 나도 마음이 착잡했다. 없는 것의 설움이 아니라, 시대의 바람이 나를 울게 만들었다. 자꾸 눈물이 나서 청송에 도착한 후 딸에게 전화하여 네가 원룸 집 언덕에서 손을 흔들던 모습이 자꾸 생각나서 눈물을 그칠 수가 없다고 하자, 딸은 ‘아빠,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비록 반 지하 원룸에서도 저는 씩씩하게 잘 생활하고 있습니다.’ 전화 저 편 딸의 목소리가 개울물 소리가 되어 내 귓전을 스친다.

 

수십 억대를 넘나드는 아파트 시세, 아파트 전세도 수억대다. 의식주가 사람의 가장 기본적인 삶의 토대인데,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는 이런 기본 틀이 부서지고 있다. 노동의 대가는 삶의 윤택함인데, 잘 곳도, 먹을 것도, 입을 것도 부족한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이다. 필자가 굳이 이 지면에서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비판하거가, 논제로 삼자는 것은 아니다. 가진 것이 부족한 사람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무지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동해안에는 연일 강풍 특보가 내렸다. 봄이 오는 길목이지만, 아침저녁은 아직 꽤 쌀쌀하다. 낮과 밤 기온차가 심한 요즘이다. 겨울이 가고 봄을 맞이하는 길목에 서 있지만, 우리 마음의 진정한 봄은 아직 멀리 있다. 배드민턴 중학교 특기생인 학생 한 명이 훈련 중 무릎을 다쳐 목발을 하고 다니는 모습을 보고 내가 말했다. ‘거추장스런 네 발 대신에, 빨리 두 발로 일어서서 대회에서 우승하자고.’ 우리가 진정한 봄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거추장스런 것들을 제거하는 것이다. 그래야 진정한 봄이 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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