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쯤에서 돌이켜 보면 지나간 4월과 5월은 온갖 봄꽃들이 지천에 곱게 피어서 일상에 조금씩 지쳐가는 우리네 마음과 눈을 아름다운 계절 속에 가둬 둔 그런 좋은 시간이었다고 생각된다.
어쩌면, 해가 갈수록 우리네 삶이 왠지 점차 각박해지는 것만 같은 요즘 같은 세상에서는 그나마 정서적으로 조금이라도 순화 시켜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계절마다 이 땅에서 피고 지는 아름다운 꽃이 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유월이 되면 오래전부터 우리네 시골집 낮은 담장 곁에서 피고 지는 접시꽃은 우리에게는 매우 친숙한 꽃이면서도 우리 민족의 아픈 기억을 안고 해마다 피고 지는 꽃이기도 하다.
왜냐면, 지울 수 없는 동족상잔이 일어나던 그때의 역사를 묵묵히 지켜보며 피고 지는 꽃이기 때문이다. 특히 작렬하는 포성이 마을 곳곳을 불바다로 초토화가 될 때도 접시꽃은 남과 북에서 유월의 땡볕을 견디며 몰래 피어 있었으리라.
때로는 오래전 유년 시절, 골목 남자 꼬맹이들은 담장 곁에 핀 유월의 꽃인 접시꽃 붉은 꽃잎 하나를 따서 콧잔등에 붙여서 닭벼슬 흉내를 내며 철없이 뛰어놀았는가 하면, 접시꽃 씨앗이 다 여물어 갈 무렵이면 너나 할 것이 마치 접시처럼 생긴 씨앗으로 자동차 타이어 바퀴로 변형시켜 장난치며 놀던 그때 그 시절이 지금도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가는 것을 어쪄랴.
이제 유월!, 유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다. 다가오는 6월 1일은 의병의 날, 6월 6일은 이 땅의 호국영령들을 추모하는 제69회 현충일이 다가온다. 그리고 6.25전쟁, 민족상잔이 일어난 지도 어언 74년이라는 긴 세월을 보내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아직도 우리 민족은 그날의 깊은 상처와 상흔을 지우지 못하고 해가 갈수록 남과 북의 긴장은 더욱 높아만 가는 지금의 현실적 문제를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된다.
돌이켜 보면, 번영된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기까지는 이 땅을 지키기 위해 한목숨 초개처럼 던지신 숱한 호국영령들이 계셨기에 가능했던 여기, 대한민국이 있다는 것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정부와 관계부처에서는 해마다 돌아오는 '호국보훈의 달'을 맞이하여 연례행사처럼 치루는 형식적인 일련의 행사가 아니라 모든 국민들로부터 유월 한 달 동안만이라도 '호국보훈의 달'의 진정한 의미를 잊지 않는 한 달이 될 수 있도록 다양한 행정적인 기획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본다.
지금도 시골 마을 어귀 낮은 담장 곁에 다소곳하게 피어 있는 유월의 꽃, 접시꽃은 우리 곁을 떠나지 못하고 피어 있다. 왠지 도종환 시인의 '접시꽃 당신' 이라는 시가 새삼스럽게 생각나는 유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