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마*에서 게걸음 걷다
안윤하
전시실에 세면기 하나 높이 걸려 있고
벽을 뚫고 나온 다리 하나가
구두를 신고 있다
이해할 수 없는 설명과
더욱 복잡하게 만드는 평론,
나는 무식한 관객이라고 속으로 말한다
아니, 저들이 수군거리며 혼돈으로 내몬다
현대를 대표하는 예술품이라
모마에 전시돼 있는 걸까
모마에 전시되어 있어 유명해진 걸까
나를 무식하다며 내려보다가
구둣발로 보이지 않게 차고 있는 것일까
쓴 사람도 모르고 읽는 사람도 모르는
시를 앞에 두고 시인이라고 적힌
종이비행기가 허공을 맴돈다
궤도에서 불규칙하게 날다가 곤두박질한다
현대인이 현대 언어를 알아듣지 못한다
벌거벗은 임금님**의 옷을 바라보는
나는 어정쩡한 관객일까
누군가가 푸른 비단결 감촉 같고
창의적인 디자인이라고 평을 하면
대각선으로 끄덕이라고 귀엣말을 한다
눈치 살피다가 엉거주춤
현대라는 테두리 안에 왼발을 슬쩍 밀어넣는다
구태여 벌거벗었다고 말할 필요는 없지
게걸음으로 슬금슬금 빠져 나가야겠다
*미국 뉴욕의 현대미술관
**안데르센의 동화
안윤하 시집 『모마에서 게걸음 걷다』(시학, 2016)의 시편들은, 세상을 바라보는 측은지심과 비극적 음화들로 빼곡하다. 언니의 아픔을 서사로 풀어낸 「여자의 삶은 소설책 열두 권이다」는, 실존이야말로 인간 삶의 가장 ‘리얼한 풍경’임을 증거한다. 소설같은 비극적 스토리의 주인공이 언니의 삶이다. 마지막 행은 절구다. “서른의 나는 참! 가엽구나” 폐부를 찌르는 청상과부의 곡진한 외침이 있다. 시 「강 목수 아들」은 뇌성마비 1급의 장애우를 둔 강 목수의 이야기이다. “컴컴한 방 어둠을 베고 누운” 뇌성마비 아들을 두고 공사장에 나갈 수밖에 없는, 아비의 흉중은 핏물이 고였다. 뇌성마비 아들의 주검을 끌어안고 "새까맣게" 타버린 아비의 절규는 감동적 실화이다. 김석준의 평처럼 “안윤하 시인의『모마에서 게걸음 걷다』는 불규칙하게 탄주되는 시간의 형식을 다양한 존재의 음률로 언표하면서, 나, 너 그리고 우리에게 속한 인간학적인 진실을 시발로 고양시킨 작품집”이다.
특히 표제시 「모마에서 게걸음 걷다」는 현대 예술의 ‘난해성’을 찌른 역설의 시학이다.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서 접한, 설치미술의 충격은 그녀의 예술에 대한 지금까지의 이해를 전복시킨다. “전시실에 세면기 하나 높이 걸려 있고 / 벽을 뚫고 나온 다리 하나가 / 구두를 신고 있다” 이런 기하학적 표현추상주의는 점, 선, 면의 단순화를 통해, 관객들에게 강렬하게 묻는다. “과연 예술은 이해되어야 하는가?” 하고. 화자의 대답은 이해 불가이다. 오히려 오브제는 ‘폭력적 시각’으로 다가선다. 하여, 그녀는 “이해할 수 없는 설명과 / 더욱 복잡하게 만드는 평론,”을 읽으며, 오히려 “나는 무식한 관객이라고” 자탄한다. 화자에게 현대 예술의 의미야말로 혼돈스럽다. 하여, 그녀는 또 묻게 된다. ‘현대 미술은 / 현대 시는’ 과연 이해될 수 있을까? 기존 가치를 깨부수는 현대 예술의 특징은 개인과 사회와의 불통의 관계이다. 모던아트, 초현실주의 사조는 기존 예술 체계를 전면적으로 뒤집어 엎는다. 「모마에서 게걸음 걷다」는 혼돈의 느낌과 동시에 시인의 마음속에 ‘추상 미술→난해시’로 이어지는 연상작용이 일어난다. 시인은 오늘날 유행하는 난해시들에 대해 부정적 반응을 보인다. 그는 이 난해시에 대해 “쓴 사람도 모르고 읽는 사람도 모르는/시를 앞에 두고 시인이라고 적힌/종이비행기가 허공을 맴돈다”에서 보듯 머리를 어지럽게 하는 시로 생각한다. 그래선지 “현대인이 현대 언어를 알아듣지 못한다”에서처럼 난해시에 대한 비판을 은연중 드러내고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광풍이 지나가고 있는 이즈음의 현대시 풍속도는 의식의 흐름, 자동기술법, 다중적 목소리, 혼성모방 등 시가 극도의 주관성과 난해성을 띠고 있음이 사실이다.
이런 경향에 대해 시인은 불편한 감정을 느끼면서도 현대 미술을 이해하려는 자신의 태도를 진솔하게, 그리고 골계적으로 유머러스하게 표현하고 있다. “벌거벗은 임금님의 옷”은 사실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어정쩡한 관객”이 된 시인은 “누군가가 푸른 비단결 감촉 같고/창의적인 디자인이라고 평을 하면” 잠시 “눈치 살피다가 엉거주춤” 고개를 끄덕인다. 혹시 자신이 현대 미술에 무지한 사람이라 낙인이 찍힐까봐 두려워 무의식으로 심리적인 방어기제가 작동한 것이다. 그래서 시인은 “구태여 벌거벗었다고 말할 필요는 없지”라고 하며, 더 이상 자신의 페르소나를 노출하기 싫어 “게걸음으로 슬금슬금 빠져 나가야겠다”고 말한다. 이 마지막 장면이 얼마나 실소를 자아내게 하는가. 현대 미술과의 한 판 싸움 도중 그 결과를 미리 예측한 듯 은근히 도망치려는 모습이 유쾌함과 함께 신선한 감동을 전해주고 있다.”(이진엽 평론가) 하여, 안윤하의 「모마에서 게걸음 걷다」를 다 읽고 나면, 우리는 ‘예술의 본질’을 심각하게 되묻게 된다. 그리고 현대시의 난해함도 질타하게 된다. “현대인이 현대 언어를 알아듣지” 못하는 세상이 옳은지 그른지도 묻게 된다.
1962년 경북 영덕 출생. 대구에서 성장.
1994년『문학세계』 ‘시 부문’ 신인상 수상으로 등단
1997년 제 1시집 『시가 걸리는 저녁 풍경』 출간
2002년 제 2시집 『구멍』 출간
2004년 제 3시집 『처녀와 바다』 출간
2007년 동시집 『우리 나라 연못 속 친구들』 출간
2011년 시 에세이집 『시, 낭송의 옷을 입다』 출간
2014년 평론집 『시에 미치다』 출간
2015년 대구예술상 수상
2016년 제 4시집 『깍지』 출간
2017년 매일신문 신춘문예동시당선
2017년 동시집 『태양 셰프』 출간
2018년 시 대담 평론집 『저녁의 詩』 편저
2018년 대구문학상, 최치원문학상 대상 수상.
2020년 시선집 『고흐의 시』 출간
계간지 『문장21』 봄호 평론 당선
한국시인협회, 대구시인협회 부회장. 대구문인협회시분과위원장. 『텃밭시인학교』 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