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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기고

【김동원의 해설이 있는 詩-9】

고향신문 기자 입력 2021.07.23 11:21 수정 2021.07.23 11:28

모란

김동원
 

스님 예?

 

눕는 게 좋아 예

 

서는 게 좋아 예

 

미친년!

 

스님 예?

 

물 관리는 어떻게 하여요

 

옮긴다!

 

어디로 예?

 

업業에서 심心으로 옮긴다

 

호 호 호, 홋 홋

 

나는 구름에서 꽃 샅으로

 

번지어요


 
 시 「모란」은 여자로 은유된 모란 입을 빌어, 저잣거리의 야한 언롱言弄을 선승의 선문답으로 치고받은 이야기이다. 시는 아리까리해야 묘하다. 요리 깎고 조리 깎고, 위로 재고 아래로 재면, 뜻이 빤질빤질하여 말맛이 적다. 살다 보면 입구가 출구가 되기도 하고, 출구가 입구가 되기도 하는 것이 선禪의 세계다. 좋은 선시는 행간과 연마다 선미가 풍겨야 제격이다. “선禪이면서 禪이 없는 것이 시詩요, 詩이면서 詩가 없는 것이 禪”(석지현)이듯, 시「모란」은 차원 높은 도의 경지에 들지 말기를 바란다. 야한 은유와 비약을 통해 카타르시스를 만끽하는, 독창적인 해학의 시로 남기를 강렬히 원한다. 「모란」은 물을 매개로 서로 동화하고 드나드는 상즉상입相卽相入의 경계이자, 이어지고 또 이어지는 중중무진重重無盡의 묘법연화경의 세계이다. 하나를 통해 하나를 뛰어넘고, 일체를 통해 또다시 하나로 돌아가는 세계이다. 우주의 끝없는 시공 속에서 서로의 원인이 되며, 대립을 초월하여 융합한 이야기가「모란」이다. 선禪은 역설이자 모순이며 자가당착이다. 불가능한 사실의 열거를 통해 초월적 은유의 세계로 곧장 치고 들어간다. 극과 극의 서로 다른 두 세계를 교접시킨다. 이런 어법은 시적 대상에 상상력의 자유와 초월적 인식을 보여준다. 물음의 띠를 비틀어 역설의 답으로 꼬아 붙인 간화선이 「모란」이다. ‘둘로 나뉘지도 않고 하나에 집착하지도 않는, 무이이無二而 불수일不守一’의 화엄을 은유한 시가 「모란」이다. 
 
「모란」은 질문과 답, 그 자체가 시의 묘처이다. 나에게 선시란 시와 도의 경계이자, 칼날 위에 서 보는 작업이다. 절벽 끝에 매달려 어디에도 없는 선법을 드러내는 일이다. 알 듯 모를 듯, 보일 듯 안보일 듯, 구전심수의 심법이「모란」이다. 〈스님 예? / 눕는 게 좋아 예 / 서는 게 좋아 예〉라고 모란이 물었을 때, 왜 스님은 〈미친년!〉이란 엉뚱한 선어禪語로 비꼈을까. ‘눕는다’와 ‘선다’의 그 중의적 음양 심볼은 상징과 은유를 넘어선 묘법을 가리킨다. 합궁의 묘는 천지간 상생이자 상극이다. 하여, 모란은 더 깊이 찌른다. 〈스님 예? / 물 관리는 어떻게 하여요〉기기묘묘한 언롱으로 휘감아 친다. 참으로 난감한 화두다. 몸속 물뿐 아니라 ‘천지간의 물 관리자가 누구인가’하고 간화선으로 따졌다. 홀연히 치고 나온 선승의〈옮긴다〉란 법구는 기막힌 ‘한 물건’이다. 곧바로 자기 마음으로 들어가, 직지인심견불성불直指人心見性成佛의 경지에 도달한 돈오이다. 「모란」은 은유의 꽃이다. 하여, 여자는 물을 물로 되묻지 않고 비약을 통해 스님께, ‘당신의 생사관은 뭐꼬’라고 치받는다. 〈어디로 예?〉이 뚱딴지같은 물음에 선승의 화두가 절묘하다.〈업業에서 심心으로 옮긴다〉꽃은 물관을 통해 꽃잎으로 물을 옮기지만, 생사의 업장 소멸은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뜻이겠다. 업의 밖을 통해 업의 안을 밀어내는 방식이다. 보는 시법이 아니라 보이는 무법이다. 언어를 통해 언어를 뛰어넘는 활구이다. 눈을 뜨던 눈을 감든 같은 경지다. 본래면목은 ‘있음’도 없고 ‘없음’도 없다. 하여, 시는 들리는 것도 아니요, 들리지 않는 것도 아니다. 찾는 것도 아니요, 이미 찾은 것도 아니다. 하여 「모란」은 〈구름에서 꽃 샅으로〉자신의 붉은 꽃빛을 〈번지어요〉라고, 아리송한 선법으로 ‘툭’ 던져놓았다. 대상 속에 스며드는 물의 언어는 깊다, 아니, 높다. 물은 제 몸을 가둘 줄 알고 비울 줄도 아는 신물神物이다. 한 방울의 물에도 그늘이 숨어있다. 물은 허공에 누워 잔다. 알고 보면 별들은 우주의 물통이다. 물은 하늘의 음악이자 악기다. 물은 한순간도 동일성을 유지하지 않는다. 인간에서 식물로, 풀에서 나무로, 땅에서 하늘로 이행하는 변화 그 자체다. 세계는 보이는 물보다 보이지 않는 물이 무량하다. 물은 구체를 통해 추상이 되고, 추상을 통해 구체가 된다. 하여 「모란」의 몸속 물은 꽃빛이 되고 여자가 된다. 물은 합치면 오래 가고, 오래 가면 반드시 갈라지고, 가득 차면 흘러넘치고, 모자라면 채워지고, 마침내 다채로운 색을 거쳐 물거품이 된다. 하여, 물은 부재의 현존現存이다. 

 


1962년 경북 영덕 구계항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자랐다. 1994년『문학세계』로 등단, 2017년 매일신문 신춘문예에 동시, 2020년『문장21』에 평론이 당선되었다. 시집『시가 걸리는 저녁 풍경』,『구멍』,『처녀와 바다』,『깍지』, 시선집『고흐의 시』, 시 에세이집『시, 낭송의 옷을 입다』, 평론집『시에 미치다』, 동시집『우리 나라 연못 속 친구들』,『태양 셰프』출간하였으며, 시평론 대담집『저녁의 詩』를 편저했다. 대구예술상(2015), 고운 최치원문학상 대상(2018), 대구문학상(2018), 영남문학상 수상(2020)을 수상했다. 대구시인협회부회장, 대구문인협회 시분과위원장 역임. 한국시인협회원, 대구아동문학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텃밭시인학교』대표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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