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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집 담장 곁에 아무도 봐주지 않는 유월의 꽃, 접시꽃이 오뉴월 햇살에도 연붉은 꽃잎을 흔들며 소담스럽게 피어 아득히 자꾸만 잊혀져가는 1950년 6월25일, 그날의 아픈 기억을 되살리며 올해도 어김없이 피었다.
총탄이 비 퍼붓듯 하던 그날의 전쟁터에서도 유월의 꽃, 접시꽃은 우리네 고향 마을 담장 곁에서도 마을 초입 마다 지금처럼 연붉은 꽃잎을 피워 놓고 아수라장이 된 피맺힌 전쟁의 아픈 상처를 눈물겹게 소리 없이 덮고 있었으리라.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순국선열들과 장병들의 숭고한 호국정신을 추모하는 6월6일 현충일, 동족상전의 아픔을 이 땅의 역사에 기록된 6·25전쟁, 그리고 2002년 6월29일 북한 경비정의 서해 NLL 침범으로 인해 일어난 제2연평해전이 있었던 6월을 우리는 결코 기억에서 지워서는 안 될 것이다.
시간의 흐름은 우리들로 하여금 일상의 기억을 조금씩 망각하게 한다. 아무리 망각의 늪이 깊다 하여도 동족상전의 6·25 전쟁은 수많은 세월이 흘러가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아직도 그 때의 아픈 흔적으로 남아 있는 155마일 분단의 휴전선, 첨예한 이데올로기의 경계선 상에 있는 71년의 녹슨 세월의 철조망은 아직도 쉽게 걷힐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 현실이 너무나 안타깝다고 생각된다.
그동안 남·북 간의 긴장완화를 위해 여러 차례 남·북 실무자 회담 및 정상회담을 비롯하여 북·미 정상회담을 추진하여 가시적인 평화적 분위기가 조성되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세월이 갈수록 남과 북의 긴장은 북한 김정은의 무모하고 도발적인 군사적 핵실험으로 인해 한반도의 평화적 메시지는 더욱 요원해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지난 6월15일은 우리 기성세대들이면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이른바「6·15 남북 공동성명」을 채택한지 어언 21년이 되는 해다. 돌이켜 보면 북한 김정일과 대한민국 김대중 대통령이 마주 앉아 남·북의 긴장 완화와 평화적 공존을 위해 채택한 공동성명이었다.
그러나 빈번히 북한의 예견치 못한 돌발적인 군사적 만행으로 인해「6·15 남북 공동성명」의 의미마저 희석시켰을 뿐만 아니라 이후, 현재 문재인 정부에서도 3차에 걸쳐 남·북 정상회담을 가졌으나 이 또한 정성회담의 성과는 무의미하게 오늘에 이르고 있지 않은가.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고 있는 국제정세에도 불구하고 북한 김정은이 가지고 있는 암흑한 생각을 알 수가 없다. 따라서 지금으로써는 남·북 간의 긴장완화를 위한 관계는 그 어떠한 특단의 조치가 마련되지 않은 이상, 남·북한 평화적 공존을 위한 방법은 어쩌면 영원히 마주 할 수 없는 평행선으로 이어진 기차 레일과도 같은 것이 라고 생각해도 과언은 아닐 것 같다.
남·북 분단 71년이 된 올해까지도 한반도에는 평화적·화해적 분위기는 조성되지 못한 채 남·북 관계는 아직까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깊은 교착 상태에 빠져 있다.
6월, 호국보훈의 달도 이제 저물고 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우리 모두는 해마다 찾아오는 6월 호국보훈의 달이 지니고 있는 민족적 큰 의미를 되새기며 생활하고 있는 국민들은 과연 얼마나 되겠는지 회의감마저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물론 각자 짊어진 삶에 대한 일상관계로 호국보훈의 의미를 되새기며 살아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6·25전쟁으로 인해 우리민족이 겪어야 했던 그 피눈물 흘렸던 쓰라린 상처를 전후세대를 불문하고 마치 ‘강 건너 불구경’ 하듯이 간과해 버리는 안일한 태도는 가지지 말아야 할 것이다.
아직도 이 땅에는 동족상전의 끝나지 않은 전쟁으로 인해 그어진 155마일의 철조망은 칠흑 같은 장막으로 남·북을 가로 막고 있다. 아! 6·25, 우리는 지금 어디쯤에 서서 무엇을 생각하며 북한을 바라보고 있는가.
수많은 이산가족들은 해마다 6월이 오면 하얗게 밤을 지새운단다. 평화적 조국통일의 그날이 하루속히 다가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