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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기고

【김동원의 해설이 있는 詩-8】

고향신문 기자 입력 2021.06.07 16:45 수정 2021.06.07 16:50

이 시인 놈아

 

김동원

 

 

닥쳐요, 잊히면 좀 어때요.

 

진짜 시인이라면 구름에게 명령해요.

 

입금 좀 제때 하라고요.

 

집세가 없어요, 여보!

 

제발 노을에게 부탁이라도 해 봐요, 우리.

 

넷이서 밤마다 보름달만 뜯어먹을 순 없잖아요.

 

달무리라도 덮고 실컷 울고 싶어요.

 

당신이야 장미 년, 모란 년, 매화 년

 

끌어안고, 행간 속에 들어가면 그만이지만,

 

시인의 아내는 뭐예요.

 

그만, 그만, 내일 바람이 송금한다는

 

허황한 그딴 소린, 집어치워요. 제발!

 

빈말이라도, 돈 좀 줘 봐라,

 

이 시인 놈아!

 

 

 시와 현실

 

 현실공간이 문학공간에 들어오면, 현실은 곧 그 작가의 체험, 상상력에 의해 변형되고 굴절되어 새로운 이미지가 탄생한다. 이 새로운 이미지야말로 사실을 넘어선 진실의 세계에 닿는 다리이다. 다시 말해,「시의 언어는 우리를 꿈꾸게 해 주고, 만나게 해 주고, 나아가서는 감추어졌거나 망각되었던 삶의 모습들을 드러내 줌으로써, 우리에게 깨어남의 기쁨을 되찾게 해 주는 것이다. 하여, 시의 언어는 되찾아진 현실, 다시 태어난 현실이며, 또한 우리를 다시 태어나게 하는 현실이 아닐까(이성복)

 

 시인은 이름을 남기는 자가 아니라, 시를 남기는 사람이다. 역사의 길 위에서 현실의 욕망을 반추하는 거울이다. 그 욕망의 끝에서 상처를 돌아보고, 어떻게 이 세계를 인식할 것인지를, 묻는 자가 시인이다. 하여 시는 너무 달면 행간이 썩는다. 행이 연에 아부하면 둘 다 죽는다. 홀연히 들리는 것이 시인의 귀다. 시력詩歷이 높아질수록 시마가 깊어진다. 시의 기세가 막히는 명치끝이, 시가 뚫리는 장소다. 불가능할수록 시의 몸을 뒤집어라. 비명을 지를 때까지 말言을 찔러라. 시는 막다른 골목에 다다라서야 칼을 빼들고 덤빈다. 뒤태가 고울수록 앞이 산다. 명시는 척 보면 누구나 다 안다. 귀신처럼 연과 연 사이를 속여야 좋은 시다. 억지로 막은 행간의 감정은 봇물처럼 터진다. 밤하늘 빽빽이 펼쳐져 있는 별의 수만큼이나 땅에는 시어들로 깔려있다. 형과 상들이 저마다의 상징과 은유로 이름을 불러주기를 고대하고 있다. 시인은 굳이 본체를 보려고 애걸복걸할 필요가 없다. 흔들리는 사물의 그림자만 잘 보아도 그것의 기미와 기척을 낚아챌 수가 있다. 하여, 나만의 언어 감옥에 갇혀 살지 말고 꼿꼿이 면벽한 채 수행하라. 집착은 종종 시인을 우스꽝스럽게 만든다. 해학humor과 풍자의 다리를 넘나들 때 시적 상상력은 폭발한다. 말을 비틀면 화자는 희화된다. 꿈과 현실의 괴리는 낭만적 아이러니Romantic Irony를 낳았다. 특히 시에서 욕설은“나, 제발, 욕이라도 먹게 해서, 정신 차리게 좀 해줘”(김열규)라고 발버둥치는, 병든 개인이나 부조리한 사회의 구조 신호다.

 

 「이 시인 놈아」는 화자 ‘아내’의 방백/aside을 통해 ‘시인’의 무능을 까발린 작품이다. 문청 시절 나는 시인이 되면 나라에서 월급을 주는 줄 알았다. 이 글을 쓰는 아침 나는, 청상과부로 살다 저승에 가신 어머니에게 용서를 빌어야 한다. 결혼 후 어느 날 아내가 쌀독에 쌀이 떨어졌다고 했다. 순간 나는‘왜, 쌀이 떨어졌지?’라고 반문하며 아내를 의아하게 쳐다보았다. 무능의 극치를 용서해주길 바란다, 사랑하는 아내여! 병病이 깊이 들고서야 나는, 두 여자가 철없는 나를 위해 얼마나 고행하였는지를 깨달았다. 아내는 어린 남매를 들춰 메고 압력밥솥처럼 팽글팽글 평생 힘겹게 돌았다. 희한하게도 그녀는 내게 한 번도〈시를 그만 두세요〉라고〈빈말〉이라도 말한 적이 없다. 하여「이 시인 놈아」는‘아내’가 그 말을 꺼내기 전, 먼저‘나’를 꾸짖음으로써 남은 생을 비껴가고자 한다. 곰곰이 내 삶의 뒤쪽을 쪼개 봐도, 아무도 내게〈닥쳐요〉라고 명령하지 않았고, 누구도〈입금 좀 제때〉하라고 지시한 적이 없다. 늘 나의 몸은 내게 있어 주체와 객체 사이에 놓인 환상이었다. 시인은 그 자체가 은유이자 알레고리Allegory이며 이미지이다. 하여〈집세〉를 제때 내기 위해서〈노을〉이 될 필요는 없다. 가족이 밤마다 배가 고파〈보름달〉을 뜯어먹어도,〈장미 년, 모란 년, 매화 년〉을〈끌어안고, 행간 속에 들어가〉나오지 않아야 시인이다.「이 시인 놈아」속에는 현실 공간과 꿈의 공간이 역설로 재배치된다. 아무리 아내가〈빈말이라도, 돈 좀 줘 봐라, / 이 시인 놈아!〉하고 외쳐도, 이번 생에선 나는 ‘못 들은 척’ 시로만 살 것이다.

 

 결국 「이 시인 놈아」는 밥과 예술과의 관계, 시의 형식과 내용의 문제를 동시에 역설로 묻는다.〈시를 쓴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시를 논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러나 이에 대한 답변을 하기 전에 이 물음이 포괄하고 있는 원주가 바로 시에 있어서의 형식과 내용의 문제와 동심원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쉽사리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시를 쓴다는 것―즉 노래―이 시의 형식으로서의 예술성과 동의어가 되고, 시를 논한다는 것이 시의 내용으로서의 현실성과 동의어가 된다는 것도 쉽사리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 시는 온몸으로, 바로 온몸을 밀고 나가는 것이다. 그것은 그림자를 의식하지 않는다. 그림자에조차도 의지하지 않는다. 시의 형식은 내용에 의지하지 않고, 그 내용은 형식에 의지하지 않는다. 시는 그림자에조차도 의지하지 않는다. 시는 자유의 과잉을, 혼돈을 시작하는 것이다. 모깃소리보다도 더 작은 목소리로 시작하는 것이다. 모깃소리보다도 더 작은 목소리로 아무도 하지 못한 말을 시작하는 것이다. 아무도 하지 못한 말을. 그것을…….(김수영, 「詩여, 침을 뱉어라―힘으로서의 詩의 存在」에서)〉

 

 그렇다. 시는 현실을 뚫고 나가는 시인의 관觀이다. 시는 불가능에 도전하는 언어 예술이다. 궁극적으로 미완성의 노정이다. 끊임없이 산꼭대기에서 굴려야만 하는 시지프스의 고뇌의 바위다. 오직 이 순간만을 파고드는 집중이야말로 ‘미완성’의 길이다. 머무는 곳마다, 서 있는 자리마다, 시가 태어나는 곳임을 자각해야 한다. 하여 시는, 궁하면 변하고窮則變, 변하면 통하고變則通, 통하면 오래간다通則久’는, 주역의 그 미완성의 극極을 사랑한다. 그래서 나짐 히크메트(터키 출생. 1902~1963)는 이렇게 노래하였는지도 모른다.〈가장 훌륭한 시는 아직 쓰여지지 않았다 / 가장 아름다운 노래는 아직 불려지지 않았다 / 최고의 날들은 아직 살지 않은 날들 / 가장 넓은 바다는 아직 항해되지 않았고 / 가장 먼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 불멸의 춤은 아직 추어지지 않았으며 / 가장 빛나는 별은 아직 발견되지 않은 별 / 그때 비로소 진정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 / 어느 길로 가야 할지 더이상 알 수 없을 때 / 그때가 비로소 진정한 여행의 시작이다 -「진정한 여행」전문〉

    

김동원 시인

 

 1962년 경북 영덕 구계항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자랐다. 1994년 『문학세계』로 등단, 2017년 매일신문 신춘문예에 동시, 2020년 『문장21』에 평론이 당선되었다. 시집 『시가 걸리는 저녁 풍경』, 『구멍』, 『처녀와 바다』, 『깍지』, 시선집 『고흐의 시』, 시 에세이집 『시, 낭송의 옷을 입다』, 평론집 『시에 미치다』, 동시집 『우리 나라 연못 속 친구들』, 『태양 셰프』 출간하였으며, 시평론 대담집 『저녁의 詩』를 편저했다. 대구예술상(2015), 고운 최치원문학상 대상(2018), 대구문학상(2018), 영남문학상 수상(2020)을 수상했다. 대구시인협회부회장, 대구문인협회 시분과위원장 역임. 한국시인협회원, 대구아동문학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텃밭시인학교』 대표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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