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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기고

[기자수첩] 버스공제조합, 누구를 위한 제도인가?

고향신문 기자 입력 2025.08.14 08:19 수정 2025.08.14 08:28

정차 중 발생한 중상 사고 보험 거부,제도의 허점 드러나
시골 노약자 의존 높은 버스, 안전망 사각지대 방치 논란

↑↑ 박문희 기자/
한 시골 마을에서 버스를 타고 이동하던 70대 할머니가 차량 내부에서 넘어져 고관절이 골절되는 중상을 입었다. 사고는 버스가 완전히 정차한 상태에서 발생했다. 그러나 버스공제조합은 '정차 중 발생한 사고는 보험 처리 대상이 아니다'라는 이유로 해당 건에 대한 보험 접수를 거부했다.
 

피해자 가족과 지역 주민들은 "대중교통 이용 중 발생한 중대 사고를 외면하는 것은 제도의 취지에 어긋난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버스공제조합은 전국 버스회사가 가입해 운행 중 발생하는 교통사고로 인한 피해를 보상하는 상호부조 형태의 단체다.
 

설립 취지는 버스 운행 과정에서 발생하는 인명·물적 피해를 신속히 처리해 피해자 구제를 돕고, 버스회사 경영 안정성을 높이기 위함이다. 하지만 현행 약관은 '차량이 주행 중일 때 발생한 사고'만을 주요 보상 범위로 한정하고 있어 정차 중이나 승하차 과정에서 발생한 일부 사고는 배제된다. 이번 사례처럼 버스 내부에서 중대한 부상이 발생했음에도 '정차 상태'라는 이유로 보상이 거부되는 것은 제도의 허점이 여실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교통사고 전문 변호사들은 이 같은 규정이 현실과 괴리되어 있다고 지적한다. 실제 버스 탑승객은 차량이 정차 중이라도 좌석에서 일어서거나 승하차 준비를 하다가 균형을 잃고 넘어질 수 있다. 특히 노약자의 경우 작은 충격에도 골절이나 장기 손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이런 상황에서 보상 체계가 작동하지 않는다면, 피해자는 고액의 치료비를 스스로 감당해야 한다.
 

문제는 시골 지역일수록 버스 의존도가 높다는 점이다. 농촌 고령층은 개인 차량을 보유하지 않거나 운전이 어려워 대중교통, 특히 시내버스를 주요 이동 수단으로 사용한다.
 

버스공제조합이 '정차 중 사고'를 외면할 경우, 이들 취약계층은 일상적인 이동 과정에서 언제든 경제적·신체적 위험에 노출된다.
 

지역 주민 김 모 씨(72)는 "버스는 사실상 시골 주민의 발"이라며 "타다 다쳐도 보상을 못 받는다면,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는 대중교통이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관련 업계 전문가들은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버스공제조합의 보험 약관을 현실에 맞게 개정해 정차 중·승하차 과정에서의 사고도 적극적으로 보상 범위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버스 내 안전장치 강화도 병행해야 한다.
 

손잡이와 난간 배치를 개선하고, 미끄럼 방지 바닥재를 도입하는 등의 물리적 안전 대책이 요구된다. 버스 기사 교육 과정에서도 '정차 후 탑승객 안전 확인'을 의무화해 승객이 안전하게 이동할 시간을 확보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된다. 이번 사건은 단순한 개인 불운의 문제가 아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국민이라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위험이며, 특히 고령·장애인 등 교통약자에게는 더 큰 위협이 된다.

 

버스공제조합이 설립 취지를 다시 되새기고, '운행 중'이라는 좁은 기준을 넘어 실질적인 국민 안전망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국민의 발'이라는 대중교통의 의미는 무너지고, 서민과 취약계층은 또 다른 사회적 소외를 겪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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