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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기고

【김동원의 해설이 있는 詩-30】 가재잡이

고향신문 기자 입력 2025.05.15 11:30 수정 2025.05.15 11:33

김용탁

비단개구리 한 마리 잡아
뒷다리 하나 빌려 칡에다 묶고,
산골짝 작은 개울 맑디맑은 웅덩이 큰 바위 밑에
모래를 밀어내고, 작은 구멍 찾아내는 재미

조용히 천천히 미꾸라지
그 구멍에 밀어 넣어 한 손으로 잡고,
버들치는 놓치고, 소금쟁이는 행간에 풀어 놓고,
온몸은 전기에 감전되듯 긴장되면,

나도 모르게 물속 어린 내 얼굴을 보지요
그때쯤 신호가 오면,
묶여있는 개구리 다리를 가재는
두 다리 집게로 단단히 붙잡고 놓지 않지요.

그러면 나는 서서히 칡 줄을 잡아당기고,
가재와의 싸움이 시작되지요.
그 녀석은 정신없이 개구리 뒷다리를 먹느라
끌려 나오는 것도 모르고,

나는 온 전신의 힘과 신경을 엄지 검지 줄에 모으고
마침내 주황색 가재 앞다리가 보일 때쯤,
잽싸게 줄을 잡아당겨, 장갑 낀 다른 손으로 잡아채지요.
아, 그 재미 그 행복 누가 알까요.


대구 마비정 출신인 김용탁의 2023년《문장》여름호 당선작「가재잡이」는, 서정시의 풍경을 정겹게 담았다. 시인이 태어난 고향 옛집 마비정은, 언제나 뒷산 뻐꾸기 소리가 손님을 반갑게 맞는다. 시인은 그 앞마당에서 저녁을 먹던, 하늘나라로 가신 부모님 모습이 그립다고 하였다. 그곳은 동네를 돌면 우물이 보이고, 개울엔 동무들과 가재 잡던 풍경이 그림 같은 곳이다. 정겨운 벽화가 토담을 따라 마을을 두르고, 연리목이 사랑하는 연인처럼 서로 껴안고 산다. 지금은 벽화마을로 전국적 명성을 얻었지만, 우리나라에서 최고령 옻나무는, 그 고장의 자랑거리다. 대나무 터널길과 이팝나무길은 소담한 동네 풍경을 곱게 채색한다. 시인은 부모님께 많은 사랑을 받았다고 하였다. 안방 건넛방을 뛰어다니며 다복한 형제자매와 함께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고 한다. 모두 다 가난한 시절 한약방을 한 선친 덕분으로, 교직 생활과 훗날 또 다른 직장 생활을 도시에서 마쳤다고 한다.

지금도 시인은 까만 손톱에 흰 이빨을 드러내고 잘 웃던 어린 날 동무들 얼굴이 떠오른다고 했다. 남평문씨 세 거지를 지나 마비정까지 걷어가면, 밤하늘 달빛이 참으로 곱다. 여름밤 논두렁에서 울어대던 개구리 합창은, 한 폭의 한국화 같다. 어린 날 시인은 반딧불이를 손안에 넣고, 또래 동무랑 마냥 그 놀이에 빠져 즐거웠으리라. 김용탁 시인은 풍류남아이자 낭만객이다. 시조나 당시(唐詩)의 오언 절구, 높고 깊은 명구를 암송하곤 한다. 카톨릭 신자인 시인은, 성경의 시편을 암송하길 좋아한다. 요즘은 밤낮 시로 살고 있다. 언어를 요리조리 갖다 붙이고, 감정도 넣고, 덜어낼 것은 덜어내고 하다 보면, 희한하게도 시가 태어난다고 좋아한다.

서정시는 개인의 체험과 추억의 궤적을 따라간다. 현실 속에서 곁고튼 감각적 이미지를 내밀화 한다. 특히 시는 타인과의 공감과 소통을 매개로 펼쳐진다. 좋은 시는 자신만의 아름다운 무늬를 노래할 때 빛난다. 언어의 기술이 부족하더라도, 시인이 되려는 사람은 끝까지 사물을 응시하고 관찰하여야 한다. 

 

김용탁의 수작「가재잡이」는 “어린” 시절 가재잡이 놀이를 실감 나게 그렸다. “뒷다리 하나 빌려 칡에다 묶고” 가재를 꾀어내는 긴장미는 흥미진진하다. “산골짝 작은 개울” “웅덩이”에서 가재잡이 하는 소년 김용탁이 보인다. 물속 “구멍에 밀어 넣어 한 손으로” “미꾸라지”를 잡는 모습은 천진하다. 그 옛날 개울은 “소금쟁이”들의 놀이판이었다. 물 위를 걸으며 마음대로 돌아다니는 소금쟁이는 신기한 곤충이다. 가재는 한 번 먹이를 나꿔채면 죽어도 놓지 않는 고집불통이다. “개구리 뒷다리를 먹느라 / 끌려 나오는 것도 모르”는 그 가재는, 어리석은 인간을 풍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 지난 시절의 흑백 풍경이 김용탁의 시「가재잡이」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 김동원 시인

1962년 경북 영덕 구계항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자랐다. 1994년 『문학세계』로 등단, 2017년 매일신문 신춘문예에 동시, 2020년 『문장21』에 평론이 당선되었다. 

 

시집 『시가 걸리는 저녁 풍경』, 『구멍』, 『처녀와 바다』, 『깍지』, 『빠스각 빠스스각』, 시선집 『고흐의 시』, 시 에세이집 『시, 낭송의 옷을 입다』, 평론집 『시에 미치다』, 동시집 『우리 나라 연못 속 친구들』, 『태양 셰프』출간하였으며, 시평론 대담집 『저녁의 詩』를 편저했다. 대구예술상(2015), 고운 최치원문학상 대상(2018), 대구문학상(2018), 영남문학상 수상(2020)을 수상했다. 

 

대구시인협회부회장 역임했으며, 대구문인협회 이사, 한국시인협회원, 대구아동문학회원, 『텃밭시인학교』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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