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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9년 3월 영덕읍교회 역사 연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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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측 사진의 내용은 1919년 3월 영덕읍교회 연혁지에 기록 된 것으로 당시 싱힝을 살펴보면 영덕읍 지역의 3,1 독립 만세운동은 기독교 청년들과 당시 조사인 김세영 권태원으로 부터 전갈을 받고 김우일 목사 강우근 장로는 권찬영 선교사의 조언으로 계획을 본 교회에서 세웠다.
"임시 전도인으로 敎會를 지키던 강우근씨와 多數의 敎人들이 大韓독립만세 운동에 참가하게 됨으로 日人경찰에 체포되어 투옥되자 그 후부터 敎會 감시와 탄압이 심해졌다 (*강우근 장로 2년 형을 받음)
▶1919년 3월에 기록된 영덕읍교회 연혁지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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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9,3,18운동에 참여한 영덕읍예배당 교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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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8일 영덕 장날을 기하여 영덕읍예배당 교인들이 중심이되어 오전 10시경 만세운동을 하기로 했다. 때마침 장날이라 약 100여 명의 군중이 모였다고 증언 한다. 이어서 오후에는 영해 장터에서 열리는 대규모 행사에 참여하였다. 3월 18일 오전에 열린 남부지역 영덕·강구·지품·남정을 중심으로 약 100여 명으로 평화적으로 진행 되었으며 대체로 교회 목사 조사(전도사) 영수 등 기독교 지도자와 신자들이 운동을 주도 하였다. 한편 오후에 열린 영해·창수·병곡·축산면괴 일부 남부지역 기독교 지도자와 신자 농민들로 영해 장터에서 약 3,000여명의 군중이 모인 대규모 운동이였다.
북부지역 운동은 앞서 남부지역 운동에 대비한 일제의 방어에 대항하기 위한 물리력이 동원된 시위였다. 재판에 넘겨진 사람은 약 170여 명으로 전국 최대의 인원이였으며 이들중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인들 이었다
※아래 사진 출처:국사편찬위원회 3,1운동 테이타 배이스 (25,2,15입수, 영덕읍교회 강우근 장로 판결문 일부)
3월 19일 영덕면에서 만세시위가 계획되었으나 사전에 발각되어 실행되지 못함

● 6회에 연재된 영덕 3,18독립만세운동 내용을 봐 주시고 여러 모양(60여명 : 문자, 똑, 전화, 대면)으로 격려 해 주심에 용기를 얻고 감사드립니다.
자료 수집, 정리 : 영덕읍교회 봇도랑(水路) 장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