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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금요칼럼] 영영문헌총집발간 개소식-영덕과 영양이 함께

고향신문 기자 입력 2025.03.21 10:52 수정 2025.03.21 13:55

김 인 현 교수(고려대법학전문대학원, 영해중고총동창회 직전 회장)

우연하게도 영영은 나의 애창곡의 제목이다. 저음의 가수 나훈아가 부르는 영영을 듣기를 좋아하고 나도 또 그 곡을 부르기도 좋아한다. 나에게 영영은 또 다른 의미를 갖는다. 나는 오랫동안 영덕과 영양이 하나되어 영영군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왔다. 

 

영덕군은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영해부의 일부였다. 1914년 영덕군이 영해군을 흡수하면서 오늘날 영덕군이 탄생했다. 당시 영해부는 현재의 영덕을 중심으로 하는 북부 5개면과 영해를 중심으로 하는 남부 4개면 그리고 영양과 청송의 일부를 포함했다. 

 

영양은 가장 마지막으로 영해부에서 떨어져 나갔다. 석보면은 해방 후에 행정구역개편으로 영덕군에서 영양군으로 나갔다. 이런 이유로 영양 사람들은 영해 사람들과 통혼을 많이 했다. 영양과 영해는 지금도 경제적으로 인적으로 교류가 많다. 이렇게 보면 영덕, 영해, 영양은 같은 뿌리이고 경제적으로도 하나이다. 이런 세 개의 행정구역을 통괄하는 단어는 영영(盈英)이다.
 

반가운 편지 한 통을 받았다. 3월 19일 영영(盈寧)문헌총집을 발행하는 사무소를 개소하오니 참석해달라는 소식이다.
 

영덕과 영해지역의 역사적인 문헌을 하나로 엮는다는 것이다. 훌륭한 기획이다. 오랫동안 그 필요성을 필자도 느껴오던 것이다. 시간을 내어서 다녀오기로 했다. 개소식에서 축사를 할 기회를 얻었다. 나는 나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런 작업이 필요함을 역설했다.
 

"저의 집안에도 책자가 하나 내려왔다. 1830년에서 1860년대에 영해부의 남면(현 축산면 축산2리 염장)에 살았던 선조들의 이야기이다. 양천세헌록이라는 이름의 한문으로 된 책자이다. 집안에서 번역을 하자고 결정되었다. 번역을 해보니 두 가지 내용이 골자였다. 양대 효자가 탄생했는데 영해부와 경상도의 유림들이 표창을 해달라는 상소를 30여 차례 올렸다. 그 기록들이다. 여기에 주인공들이 주고받은 편지글 들이 또한 들어있었다. 그 안에는 1839년 이장우 영덕 현감이 보낸 편지도 3통 포함되어있다. 명란을 잘 받아 맛있게 먹었다는 내용, 축산포에 빗을 팔러 담양에서 친구가 도와달라는 이야기 등이 있다. 이를 통하여 우리는 영덕지방이 유학이 발달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어느 집안이나 이런 문헌들을 공식적으로 이번 작업에 내어놓아서 군민과 출향인들이 자부심을 가지도록 해야한다. 개인 집안이 번역작업을 하려면 쉽지가 않다. 공공에서 작업할 때 같이 하면 편하다. 훌륭한 사업의 시작을 축하한다."
 

미쳐 행사장에서 말하지 못했지만, 나는 이번 사업의 범위가 영양으로까지 확대되어 기술되어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영양에 가보면 학술대회에서 갈암 이현일 선생의 윗대는 보이지 않는다. 이것은 영해에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유물들이 모두 있기 때문이다. 영양의 문화는 영해를 빼고는 말할 수 없다. 현재 행정구역이 영덕이 아니라 영양에 속하기 때문에 영해의 역사를 넣지 못한다면 반쪽에 지나지 않는다. 

 

영덕도 마찬가지이다. 찬란했던 영덕과 영해의 문화가 있다. 고려시대의 가사문학을 대표하는 신득청의 역대전리가, 나옹화상, 목은 이색 선생, 갈암 이현일 선생의 뒤를 이어가는 현대의 인물은 안타깝게도 영덕에는 보이지 않는다. 현대에 들어서 영양에 훌륭한 분들이 더 많이 탄생했다. 근대와 현대의 영덕문화는 영양의 찬란한 인물들을 포섭하여 기술할 때 비로서 완성되고 더 자랑스러워진다. 이런 의미에서 영영(盈寧)지는 영영영(盈寧英)지로 확대되어 기술되어야 완성도가 높아진다.
 

문화적으로 경제적으로 영덕과 영양은 하나로 이해되고 실행되어야 한다. 언젠가는 행정구역으로도 합쳐져서 하나가 되어야 더 오래 존속될 수 있다. 인구 1만 5천 명에 근접하여 울릉군 다음으로 작은 군이 된 영양이다. 

 

영덕도 인구가 소멸 되어가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3만 5천 명이 깨어진다. 두 군이 합쳐서 5만 명은 되어야 독립된 행정구역으로 존속할 수 있다. 인근의 포항이나 울진이 단단하게 자리를 잡고 있다.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 위해서는 더욱이 하나로 되는 것이 필요하다. 

 

행정상으로 하나가 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렇지만, 경제적으로 문화적으로 하나로 합하여지는 것은 쉽게 가능할 것이다. 이번 영영문헌총집도 영덕군이 주관하는 사업이기 때문에 영양을 사업범위로 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영양군과 의회의 공식적인 참여가 필요할 것이다. 사업을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석보 등 영양의 자료들이 포함되게 될 것이다. 필요성을 많은 사람들이 느끼게 될 것이다. 제2차 사업은 영양군과 같이 작업을 하면서 영덕과 영양은 문화적으로는 점차 하나되는 단계를 밟아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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