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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금요칼럼] 그 때는 몰랐네

고향신문 기자 입력 2024.11.29 10:00 수정 2024.11.29 10:02

| 김 청 자( 패션 디자이너 김청자 브띠끄 대표)

있을 때 잘하라는 말이 그냥 우스개나 너스레 만이 아님을 실감하는 올 가을이다. 가슴이 시릴 정도로 곱게 물들던 단풍이 이렇게 그리울 줄이야 어찌 상상인들 했겠는가? 으레 가을이면 찾아와 주는 당연한 일로 무심하게 살아왔다. 그 때는 그것이 그토록 아름답고 기막힌 것인가도 별로 느끼지 못한채 당연히 즐기며 살아왔다. 기막힌 단풍의 실종을 마주하고서야 그때는 미쳐 생각지 못했던 그 아름다움에 대한 감사와 그리움에 젖어든다.
 

서울거리의 가로수 잎이 칙칙하다 못해 을씨년스럽게 눈을 어지럽히더니 만추가 되면서 오히려 뒤늦게 조금 보아 줄 정도로 물이 든 곳도 있을 정도의 가을이다. 지나치게 늦도록 고온이어서 온 현상이라고 하는데 기후 온난화의 또 다른 단면을 보면서 등골이 오싹해 지는 기분이다. 단풍을 제대로 못 즐기는 정도야 그런대로 견딘다 할지 모르지만 눈에 보이는 이 현상 보다 훨씬 심각한 문제들이 우리 삶을 피폐하게 만들지 않을까 하는데 생각이 미래의 공포로 다가온다.
 

북극의 얼음이 엄청나게 녹아내리고 빙하가 급속히 줄어든다는 보도는 이제 그냥 보아 넘길 일이 아니다. 거대한 물결이야 혼자서 거스르거나 바로 잡을 수야 없겠지만 눈에 보일 정도로 재앙의 앞일을 보여주고 있는 지경이라면 혼자의 힘들을 모아서 늦추거나 예방해야 할 적극적 대응의 시대가 늦었다는 것을 깊이 깨달아야 한다.
 

늦엇다 할 때가 오히려 빠른 때라는 말은 이제 명언을 넘어 엄중한 명령이 되엇다고 본다. 그동안의 버릇을 고쳐서 무엇이든 아주 최소한을 소비하는 일이 시작이다. 부욱 뜯어서 쓰던 휴지도 조심스레 조금씩 잘라 쓰기 시작하는 것이다. 물티슈로 쓱쓱 닦아내던 것을 행주로 닦고 한 장이라도 덜 쓰자.
 

홍수처럼 밀려드는 우편물 홍보용 종이 들을 열심히 재활용으로 분리수거를 철저히 하자. 싸졌다고 사고 또 사서 쌓여 있는 신발들일랑 잘 닦아서 재활용 함에 넣어서 다른 사람이 활용하도록 도와 주고 소비를 줄인다. 1회용품을 아예 뚝 끊을 정도의 각오로 멀리하자. 배달해 먹을 일도 완전히 끊는다는 각오로 줄여보자. 이를 악물고 단단한 각오로 시작하고 계속해야 한다. 그러지 않고는 재앙을 막을 방도가 없다.
 

무슨 경제 순환을 방해 할 일 있느냐고 눈을 흘기시는 분이 계실지 모르지만 우리의 상태가 이 정도로 심각하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 이러는 거다. 지난 여름의 폭염을 기억해 보시라 그 정도도 정도지만 그 긴 기간의 더위가 얼마나 견디 어려웠는가? 백보 양보해서 견딘다 치자 그래서 해결되는 일과성이 아니라 이미 지구가 멍들대로 멍들어 나타나는 증상임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배추 무 값이 엄청나다고 난리더니 조금 잠잠해졌지만 우리는 보도 듣도 못한 세상을 지금 살아내고 있는 것이다. 이제라도 정신 차려서 나 한 사람만이라도 라는 각오로 힘을 합치면 멍드는 지구를 살려낼 수 있다. 우리가 살아 갈 터전을 온전히 후손에게 물려주는 조상이 되어보자.
 

어느날 갑자기 영덕에 가봐야 대게를 먹을 수 없다는 보도가 귀를 때린다고 상상해 보자. 기가 막히다 못해 쓰러질 지경이 아니겠는가? 이미 오징어가 줄어들고 있고 명태가 우리 바다에서 구경하기 힘들어 지고 있다는 보도가 오보라는 발표를 듣고 싶다. 우리바다도 우리가 지켜야 하고 지구는 우리가 받들어 모셔야 될 우리의 터전이 아니겠는가?
 

옥계의 절정인 단풍을 영원히 볼 수 있게 보존해야 한다. 그러려면 나부터 조금씩 편리함을 내려놓고 없어서 못 쓰던 시대의 불편함으로 돌아가야 한다. 편리함이 우리를 유혹하면서 우리가 멍들기 시작했음을 깊이 깨닫고 지금이라도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한다. 늦었다고 생각했을 때가 빠른 때라는 말은 명언 이상의 절대명령일 수 있다.
 

아아 영덕, 내 고향 앞바다의 푸른 물결과 옥계의 눈부신 단풍의 황홀경을 어이 빼앗길 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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