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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기고

【김동원의 해설이 있는 詩-31】 수화하는 나무

고향신문 기자 입력 2025.06.20 14:25 수정 2025.06.20 14:27

서인수


나무는 잎사귀로 수화를 하네
초록 눈은 하늘의 표정을 읽고
잎과 잎 사이 구름의 노래를 듣고 있네

나는 초등학교 삼학년 때 주운 폭탄
폭발 사고로 청신경 마비되어 고도 난청 되었네

말을 한마디라도 더 알아들으려고
지나가는 입술을 뚫어져라 쳐다보네

나무와 나는 참 닮았네
나무는 밤하늘 달빛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나는 사람들 입술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나무는 별들 하고 수화를 하고
나는 하늘나라 어머니하고 수화를 하고
나무와 나는, 슬픈 마음이 참으로 닮았네



우주는 신비로운 떨림으로 가득하다. 보지 못해도, 듣지 못해도 체험의 상황과 맞딱뜨리면, 전혀 다른 울림의 시가 생겨난다. 바람은 고통의 언어를 알아챈다. 온갖 비명과 흔적을 언어의 지문에 남긴다. 숲의 언어는 잎들의 입술을 쳐다볼 때 들린다. 시는 고뇌의 작업이지만 대중을 울릴 때 폭발한다. 천지만물은 감정의 떨림을 감동으로 전하는 매개이다. 사물을 곡진하게 대할 때 위대한 떨림과 울림이 생긴다. 누구에게나 말 못 할 심연의 통곡이 있다. 그 울음소리는 너무 아파 심이心耳로만 들린다. 현대시는 기교의 언어는 있지만, 심장의 떨림판이 얇다. 삶은 그 자체가 신비로운 공명통이다. 시는 온몸을 관통한 통점이다. 하여, 새로움을 확보할 때 가능성의 언어가 된다.

기억은 시의 보물이다. 시인은 시 속에 시간과 공간의 흔적을 교직한다. 길 위에서 만난 온갖 것들의 욕망을 대신 닦는다. 시는 하늘의 천명을 받은 자의 목소리이다. 불현듯 그 마음과 생애를 온통 불길 속에 휘몰아 넣는다. 뼈를 태우고 굶주림으로 시험에 들게 한다. 하는 일마다 굴욕과 핍진으로 절망에 몸서리치게 한다. 견디는 자만이 시의 징조와 소명을 깨닫게 된다. 내면의 절규를 시의 천명으로 알아들을 때, 절경이 된다. 시의 진정성이 희박하면 졸품이 된다. 귀한 시인의 출현은 한 우주의 탄생과 비견된다. 시대의 유행에 좇지 말고, 어두움 속에서 자신만의 목소리로 언어의 살점과 뼈를 발라 먹어야 시인이다. 명시는 ‘오늘 이 순간’ 현실 깊숙이 파고 들어가, 체제의 허虛와 실實을 꿸 때 홀연히 드러난다. 시인은 세상의 아픔을 대신 울어주는 곡비哭婢이다. 그런 측면에서 서인수의 시집 『수화하는 나무』(2021, 그루)는, 듣지 못하는 자의 고통스런 비명이 들린다.

난청 장애자인 서인수의 시 「수화하는 나무」를 읽고 있으면, 다리 위에서 두려움의 충격으로 얼굴을 감싸고 떨고 있는, 에드바르트 뭉크(노르웨이, 1863~1944)의〈절규〉가 떠오른다. 이 그림은 1892년에 앓았던 화가의 끔찍한 공황발작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오슬로 교외에서 산책을 할 때 광증狂症에 사로잡힌다. “그날 저녁, 나는 친구 두 명과 함께 길을 따라 걷고 있었다. 한쪽에는 마을이 있고 내 아래에는 피오르드가 있었다. 나는 피곤하고 아픈 느낌이 들었다. (…) 해가 지고 있었고 구름은 피처럼 붉은색으로 변했다. 나는 자연을 뚫고 나오는 절규를 느꼈다. 실제로 그 절규를 듣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진짜 피 같은 구름이 있는 이 그림을 그렸다. 색채들이 비명을 질러댔다.” 명화〈절규〉처럼,「수화하는 나무」역시 슬픔으로 가득 찬 노래이다.

제5회《kt&g 복지재단 문학상》수상작인「수화하는 나무」의 시 행간을 바장이면, 서인수의 절규가 메아리친다. 십 년 전 어느 봄날, 도서관 시창작 교실에서 처음 그를 만났다. 고도난청인 그는 늘 속기사와 함께 앉았다. 강의 내내, 속기 글과 내 입술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젖은 눈빛은 무언가에 목말라 있었다. 이상하게도 나는 그의 심장이 떨리는 소리를 자주 듣곤 하였다. 그는“초등학교 삼학년 때”주운 폭탄이 폭발하여 청신경이 마비되었다. 난청인 그는“말을 한마디라도 더 알아들으려고”사람의 입술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트라우마는 개인에게 불행이나 예술가에겐 천행인지도 모른다. 고통스런 현실을 시어의 핏물로 씻어준다. 모든 시인이 나무가 잎사귀로 “수화”를 하는 현장을 목격하는 것은 아니다. 소리를 보는 서인수만의 절박한 독법讀法이다. 초록 눈이 하늘의 표정을 읽고 “잎과 잎 사이 구름의 노래를” 그는 본다. 하여, 그는 “나무”의 외로움과 참 많이 닮았다. “나무는 밤하늘 달빛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그는 “사람들 입술을 뚫어져라 바라”본다. 수화는 들리지 않는 자의 마지막 손짓 언어이다. 답답할 때마다 그는, 밤하늘 “별”을 쳐다보며 마구마구 가슴을 친다고 한다. 그러면 “하늘나라 어머니”가 내려와 그의 “슬픔 마음”을 어루만져 준다고 한다. 만약 그에게 시가 없었다면, 참혹한 ‘내면’ 의 한恨을 치유할 성소聖所를 영원히 갖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 김동원 시인


1962년 경북 영덕 구계항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자랐다. 1994년 『문학세계』로 등단, 2017년 매일신문 신춘문예에 동시, 2020년 『문장21』에 평론이 당선되었다.

시집 『시가 걸리는 저녁 풍경』, 『구멍』, 『처녀와 바다』, 『깍지』, 『빠스각 빠스스각』, 시선집 『고흐의 시』, 시 에세이집 『시, 낭송의 옷을 입다』, 평론집 『시에 미치다』, 동시집 『우리 나라 연못 속 친구들』, 『태양 셰프』출간하였으며, 시평론 대담집 『저녁의 詩』를 편저했다.

대구예술상(2015), 고운 최치원문학상 대상(2018), 대구문학상(2018), 영남문학상 수상(2020)을 수상했다. 대구시인협회부회장 역임했으며, 대구문인협회 이사, 한국시인협회원, 대구아동문학회원, 『텃밭시인학교』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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