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more
오피니언 기고

【김동원의 해설이 있는 詩-6】

고향신문 기자 입력 2021.03.29 11:04 수정 2021.03.29 11:07

시검詩劍

 

김동원

 

 

천하를 갖고 싶으냐!

 

쉬지 말고 광활한 초원에 말을 달려라

 

칼을 쳐들고 불의 행간을 뚫어라

 

아무도 흔적을 남길 수 없구나

 

바람만 칼끝을 보고 있다

 

눈을 파내어라, 귀를 묻으라

 

직유는 결코 혼자 죽지 않는다

 

귀신도 모르게 은유를 쳐내는구나

 

불이 내렸도다!

 

시시각각 말은 휘황찬란하구나

 

말이 말을 닫으니 일어나는 말이 없구나

 

달려도 달려도 이미 와 있는 말

 

검劍을 찾을 자者 영원히 없을 지니,

 

무無를 베라, 천지사방 색色을 베라

 

무덤은 산 자들의 퇴고가 아니냐

 

정녕, 천하를 갖고 싶으냐,

 

번개처럼 단칼에 놈의 목을 베라!

 

 

 

 

 왜, 나는 시에 혹惑하는가. 천지만물이 나와 불이不二한 까닭이다. 병病은 생사生死의 면벽 수행이다. 하여, 이승과 저승 사이 낀 풍경은 ‘환幻’이다. 어릴 때 나는 집 앞 바다가 우는 소리를 가끔 들었다. 달빛에 스민 혼령인 듯, 그 천길 물속에서 우는 곡소리는 슬펐다. 생에서 죽음이 싹트는 엄혹한 사실 앞에서, 죽음에서 생이 열리는 영감靈感을 느꼈다. 내 시는 병病의 문을 열고 바라본 앞마당 가득 핀 꽃의 이야기요, 피의 이야기다. 수 만 생을 윤회한 나의 또 다른 환생의 조각보다. 하여, 나는 늘 흔들렸다. 바람에 흔들렸고 외로워 흔들렸다. 놓쳐 버린 물의 무늬로 흔들렸고, 불 속 그림자로 흔들렸다. 밑도 끝도 없는 기미와 기척에 흔들렸고, 불안한 목소리에 흔들렸다. 언제나 서정은 ‘나와 타자와의 동일성의 시학’이자 꿈꾸기다. 나는 법고法鼓의 뼈와 살을 발라 먹고 창신昌新의 새 길을 연다. 만물의 음양을 받아들여 시의 형形과 상象을 빚는다. 전통의 불신과 전복이 아니라 계승과 성찰을 통해, 시의 요체를 꿴다. 현실 공간인 몸과 시의 공간을 하나로 본다. 격물格物을 궁구하여 치지致知로 나아간다. 직유를 통해 사물의 극極을 치받고, 은유를 통해 물아物我가 된다. 하여 밤낮없이 비극과 역설, 아이러니와 모호성, 풍자와 해학의 행간에 바장였다. 시의 급소, 그 사랑과 이별의 통증은 신명과 지극으로 풀었다. 소리를 쫓다 숲을 잃었고 언어를 쫓다 시를 들었다. ‘이름이 없는 천지의 처음, 무명無名’과 ‘이름이 있는 만물의 어미, 유명有名’(도덕경 1장) 사이를 헤맸다. 어둠에 손을 넣어 달을 만졌고, 바다에 머리를 넣어 해를 먹었다. 공空을 뚫다 색色을 얻었고, 색을 품다 공을 보았다. 하여, 시는 ‘천하에 천하를 감추는 작업’(약부장천하어천하若夫藏天下於天下(장자)’임을 알겠다. 하늘은 감추고 시인은 들춘다. 간절히 묻고 또 물었다. 세상을 향해 가장 아파하는 자만이, 가장 아름다운 시를 얻는다. 하여, 나는「시검詩劍」을 뽑아 한바탕 천지무天地舞를 춘다.

 

「시검詩劍」은 천하를 베는 칼이다. 해와 달 위에서 무현금無絃琴을 들으며, 한바탕 춤춘 검무劍舞다. 베고 베도 베이지 않는 무검無劍이다. 심연의 현弦이자 혼의 가락이다. 하여,「시검詩劍」을 빼들고 날마다 새벽까지 말馬을 타고 말言의 목을 베었다. 오! 천하에 뿌려진 말言의 비린 흰 피여! 지칠 때까지〈칼을 쳐들고 불의 행간을〉뚫었다. 말馬과 말言의 동음이의를 부려 천의무봉을 꿈꿨다. 바람의 심장을 상징의 끌로 각刻한 음영이, 나의 시다. 말言의 그림자를 잡아 다多겹의 이미지로 허공에 매달았다. 하여「시검詩劍」은〈아무도 흔적을 남길 수〉없다. 사람의 혀끝은 검劍이다. 몸을 베는 섬뜩한 저잣거리의 말言들. 독언毒言은 세상의 귀를 썩게 한다. 하여〈눈을 파내어라, 귀를 묻으라〉일갈하였다. 귀신도 모르는 바람의 은유. 말言 한 마디로 천하 마음을 움직인다. 말言은 창조의 기물奇物.〈시시각각 말은 휘황찬란〉하다. 입을 막고 혀를 감추면 천하의 명시가 숨는다. 말言을 잘 쓰면 검劍을 피하고, 옳은 말은 무언행無言行이다. 하여〈검劍을 찾을 자者 영원히 없을 지니,〉시검詩劍이여!〈무無를 베라, 천지사방 색色을 베라〉정녕, 천하를 갖고 싶으냐, 시인이여!〈번개처럼 단칼에 놈의 목을 베라!〉

     


1962년 경북 영덕 출생. 대구에서 성장.

1994년 『문학세계』 ‘시 부문’ 신인상 수상으로 등단

1997년 제 1시집 『시가 걸리는 저녁 풍경』 출간

2002년 제 2시집 『구멍』 출간

2004년 제 3시집 『처녀와 바다』 출간

2007년 동시집 『우리 나라 연못 속 친구들』 출간

2011년 시 에세이집 『시, 낭송의 옷을 입다』 출간

2014년 평론집 『시에 미치다』 출간

2015년 대구예술상 수상

2016년 제 4시집 『깍지』 출간

2017년 매일신문 신춘문예동시당선

2017년 동시집 『태양 셰프』 출간

2018년 시 대담 평론집 『저녁의 詩』 편저

2018년 대구문학상, 최치원문학상 대상 수상.

2020년 시선집 『고흐의 시』 출간

          계간지 『문장21』 봄호 평론 당선

한국시인협회, 대구시인협회 부회장. 대구문인협회시분과위원장. 『텃밭시인학교』 운영

 



저작권자 고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