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는 세상의 일들이야 만신창이가 되건 말건 자연은 의연하게 제 갈 길을 가고 있다. 더울 때가 되면 덥고 추울 때가 되면 추워서 오곡백과를 여물게 하고 익혀 주어 만민이 먹고 마시며 살아가기에 부족함이 없이 공급해 주는 이 기막힌 일들을 우리는 섭리라는 말로 감사한다. 그 섭리에 맞게 살아가지 못하고 너무 방만하게 지구를 괴롭혀서 오늘날 기후 변화라는 징벌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지구 파괴의 발걸음을 멈추기는 고사하고 날로 날로 더 환경오염을 늘여만 나가고 있지 않은가?
코로나 이후 급격하게 늘어난 배달음식, 포장음식들 때문에 일회용품은 산더미처럼 쌓이면서 지구는 더 신음을 토해내고 있다. 한 번 길들어진 편안함의 매력은 쉽게 인류를 제자리로 돌아가지 못하게 한다. 나 하나쯤이야, 이 정도는 어쩔 수 없어 하는 등등의 안이한 생각이 우리 등에 비수를 꽂고 있는 것이다. 그것을 우리만 모르고 살아간다.
이제 일상의 세끼도 꼬박 집에서 챙겨 먹는 것이 이상할 정도의 지경에 이른 것 같고 때를 따라 먹는 세시풍속 같은 것도 남아 있는 것 들 조차 거의 외식으로 해결하는 세태가 자연스럽게 자리잡아가고 있는 모양새다. 이맘때면 여름에 원기를 보충한다고 복날이면 으레 삼계탕을 끓이느라 집집마다 법석이었다. 삼을 고르고 황기를 준비하고 마늘을 수북히 까 놓고 생닭을 잘 손질해서 배 안에 찹쌀과 마늘로 채우고 삼과 황기를 넣고 밤과 대추, 은행들을 넣은 후 정성스럽게 아물려서 큰 솥에 넣고 펄펄 끓여낸다.
온 가족이 둘러 앉아 땀을 뻘뻘 흘리면서 닭 한 마리씩을 거뜬하게 먹으면 어머니는 그 모습을 보는 것 만 으로도 흐뭇해서 국물을 더 퍼 나르는 등 분주하게 뒷바라지를 하느라 자신은 입에 국물 한 모금 넘길 새가 없어도 입이 헤벌쭉 벌어져 만족감으로 배가 부르던 시절이 바로 엊그제 같은데 이제 빛바랜 사진이 되고 말았다.
친구와 삼계탕 집에 갔는데 줄을 서서 기다려야했다. 우리는 다음날 오기로 하고 국밥 집에 가서 뜨끈한 국밥 한 그릇 먹고 회포를 풀었다. 이열치열이라 안전하게 뜨거운 국밥에 혀가 데인 것 같아 시원한 찻집에 가서 얼음 냉차 한 잔 씩을 마시며 고향의 물회이야기로 아쉬움을 달랬다. 싱싱한 동해의 갓 잡은 생선 맛에 길들여진 우리들은 서울에서 선뜻 생선회에 젓가락이 잘 가지 않는다. 더구나 이 장마철에는 뜨악해서 아예 근처에 가지 않게 되니 더욱 고향 음식이 그리워지는 계절이다.
전복 물회, 가자미 물회, 생각만 해도 군침이 도는 그 물회 사발이 눈앞에 오락가락한다. 갓 지은 밥에 꽁치젓갈로 맛을 내고 제피 가루로 운치를 더한 그 김치 한 가닥 처억 걸쳐서 먹는 호사를 남들은 모른다.
맞벌이 가 늘어 가면서 가사로부터 해방되려하는 심리는 이해 하지만 부부가 함께 나누어서 부엌일을 하더라도 힘을 합쳐서 되도록 집에서 밥을 지어 먹고 세시 풍속에 드는 일들도 조금씩은 집에서 해결하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풍토가 마련되었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비단 옛사람이어서만은 아니다. 사람의 먹고 사는 일들이 바로 인생의 중요한 부분인데 그 즐거움을 송두리 채 내다 버린 것 같은 아쉬움에서 해 보는 넋두리 인 것 같다.
사람이 동물과 다른 것은 생존만을 위해서 먹는 것이 아니라 먹는 즐거움과 운치를 즐기는 멋을 알기 때문에 같은 떡을 먹어도 살을 박아 먹는다는 속담이 생겨난 것 아니겠는가? 우리는 유난히 멋을 즐기는 백성이다. 그 멋이 우리 고유문화를 화려하게 지키고 키워나왔다고 본다. 지구를 지키는 일에도 유비무환의 원리는 역시 금과옥조가 될 것이다. 우리가 조금 수고하고 지구를 지키자. 아주 소박한 일에서부터 그 큰 일은 시작된다.
더운 날 삼계탕 한 그릇을 식구들이 함께 마루에 둘러 앉아 땀을 흘리며 먹는 그림 한 장이 여기저기서 그려지면 좋겠다. 우리네 고향 영덕 이야 삼계탕을 물회사발이 대신 한들 조금도 이상 할 것 없을 것 같다. 그보다 더 좋은 보양식이 없을 테니까 말이다.
아아 부럽다. 친구야 고향을 지키며 이 더운 날도 시원한 물회 한 사발 마음껏 먹을 수 있으니 그아니 행복하냐, 부디 건강하게 잘 지내고 가을에 시원한 바람 쏘이며 반갑게 만나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