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필자가 교사로 재직하던 시절 선배의 부탁으로 야학에서 학생들을 지도한 적이 있다. 그들은 검정고시를 통해 지금은 단단한 사회인으로서 사회곳곳에서 활약하고 있는데, 그때 그 시절 낮에는 일하면서도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눈을 빛내던 학생들에게 주 50시간 공부를 가르쳤던 경험은 필자도 인생을 배우게 된 값진 시간이었다. 배움은 인간을 성장시키고 다듬고 또 성공의 지름길이 되어주기도 한다. 인간의 인격 형성과 사회적 인간으로서 개인이 다듬어지는데 교육의 역할이 얼마나 중차대한지! 꽃이 축제처럼 피어나던 봄밤에도, 뜨거운 여름밤에도, 낙엽 지고 눈 오는 밤에도 한결같이 야학에서 배움의 열정으로 맑은 눈을 빛내던 학생들, 배움으로 인해 이들은 희망이 있었고 열정이 넘쳤었다.
유대인들의 지혜의 보고인 탈무드에는 이런 글이 기록되어 있다. '지금까지 얼마나 많이 배웠는가 보다는 앞으로 얼마나 배우려는 의지를 가지고 학습에 투자하느냐에 따라 개인과 조직의 성패가 좌우될 것'이라고 말이다. 현대사회는 배움을 친구삼아 평생학습을 하는 사람이 성공하는 시대가 되었다. 지금은 이렇게 늘 배움을 가까이 배움과 함께하는 이들이 앞서가고 성공의 패턴을 밟게 된다. 하버드대학의 저명한 교수 John Kotter는 사람들의 평생학습을 돕는 정신적인 습관 네 가지를 지적하고 있다. 바로 첫째는 안일함을 자진해서 반납하는 태도, 둘째는 항상 자신을 낮추고 자기 잘못을 반성하는 태도, 셋째는 열린 마음으로 인생을 보고자 하는 의지, 넷째는 항상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끝까지 경청하는 태도가 그것이라고 한다.
열려 있고 소통하고 이를 꾸준히 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것이 바로 학습자의 올바른 자세이다. 이런 이는 평생 자신의 삶 속에서 학습을 할 수 있다. 이 평생학습은 그를 진부한 과거 지식 속의 존재가 아니라 살아있고 생생한 경쟁력을 지닌 이가 되게 할 것이다.
때문에 Alvin Toffler도 이렇게 말하지 않았는가. 21세기 문맹자는 글을 읽을 줄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학습하고 교정하고 재학습하는 능력이 없는 사람이라고 말이다. 필자 역시 항상 이 말에는 격한 공감을 느끼게 된다. 더구나 지식의 순환속도가 광속을 달리며 4차 산업혁명으로 일컬어지는 학습하는 컴퓨터의 맹추격을 받고 있는 지금의 현대 지식사회에서 심리학자이자 시카고대학의 교수인 Mihaly Csikszentmihalyi의 말처럼 학습을 멈춘다면 그는 나이에 관계없이 이미 늙은 사람일 것이다.
7세에 초등학교에 입학하여 부산에서 초등학교 교사를 시작으로 중등학교와 영진전문대학교 교수까지 한 번도 다른 곳으로 눈 돌리지 않고 학교가 배움터가 되었고 직장이 되어 교육을 천직으로 알고 매진해 온 지난 시절에 대해 깊은 보람을 느끼고 있다. 다시 한번 선택의 기회가 주어진다 해도, 몇십 번의 선택의 기회가 온다고 해도 필자는 이 길을 천직으로 알고 선택하고 싶다. 사회 곳곳에 필자와 배움의 시간을 함께했던 제자들이 전문직 등으로 단단하게 본연의 역할을 해내고 있음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벚꽃 향기가 그윽하게 온 세상을 물들이는 계절의 백미인 봄의 한가운데를 지나며 인생의 백미는 언제일까 생각해본다. 배움과 함께 할 때, 학습하는 시간들이 젊음과 열정을 안겨다 주는 진정 귀한 순간이라고 필자는 힘주어 말하고 싶다. 절정을 이룬 벚꽃의 아름다움 속에서 교육의 가치성과 위대함을 다시금 새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