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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금요칼럼] 짓 푸른 녹음처럼

고향신문 기자 입력 2021.06.14 15:14 수정 2021.06.14 15:17

김 청 자 ( 패션 디자이너 김청자 부띠끄 대표 ) 

세상은 온통 초록 잔치다. 아기 손가락처럼 내밀던 나무의 잎새들이 한껏 자라 너울거리며 춤을 춘다. 녹음은 날로 짓 푸르러 지고 싱그럽기 그지없다. 생명이 약동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 하고 온통 희망의 교향곡이 울려퍼지는 것 같은 숲속은 낙원이 따로 없다. 풋풋한 초록 향기가 심장을 어루만진다. 이렇게 좋은 계절이건만 방송만 틀면 어둠이 엄습하니 이게 웬일인가? 언제쯤이나 되면 우리 방송도 향긋한 기운을 전해주는 친근한 벗이 될 수 있을까? 

 

이것은 방송의 잘못이 아니라 우리네 세상사가 그렇다는 말이다. 연일 들려오는 소리가 어린이 학대와 성폭력 기사이다. 그 외에 각종 파렴치범행의 보도는 걱정을 넘어 분노를 자아내게 하는 수준인데다 고위공직자들의 도덕 불감증을 느낄 수밖에 없는 대목에서는 정말 화가 나다 못해 짜증이 난다. 너무 분노할 일이 많고 지속적이어서 오히려 짜증 수준이 된 것 같다. 

 

하루아침의 일이 아니니 고치는데도 시일이 필요하겠지만 민초들로서는 상상이 안 되는 부분에서는 아예 말을 잃을 수밖에 없다. 정말이지 그들의 변명이 진실이었으면 졸겠다는 생각이 굴뚝같은 심정이다. 세상일은 상대적이니 이렇게 세상이 된데 대한 책임은 내게도 있으리라는 겸허한 마음으로 국민적 대처가 필요할 듯 하다. 이 아름다운 신록의 계절에 우리 다 함께 녹음을 닮아보았으면 좋겠다. 그늘을 만들어 주어 더운 여름을 잘 견디게 해 주고 한껏 푸르러 열매를 튼실하게 키워주고 신선한 공기를 만들어 주고 피톤치드라는 물질까지 배출시켜 주어 우리의 건강을 돕고, 이루 다 말로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나무의 은택은 한없이 많다. 

 

이에 비해 우리는 으레 나무는 거기 그렇게 있는 것이거니 하고 마냥 홀대하고 함부로 한다. 매달리고 가지를 꺾기도 하고 잎새를 마구 훑어 내기도 한다. 그래도 나무는 말이 없이 그대로 내어준다. 이렇게 까지는 못하더라도 그런 미덕을 조금은 배우려고 노력하면 좋겠다. 고향 영덕의 복숭아나무들도 열매를 키워내기에 여념이 없을 것이다. 옥계의 푸른 물에 나무그림자가 없으면 얼마나 황량할까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6월이 오면 우리는 옷깃을 여미고 차분히 조국을 위해 산화한 순국선열들과 호국영령들께 묵념을 올린다. 그분들의 핏 값으로 오늘 우리는 평안과 번영을 누리고 있음을 너무도 잘 알기에 한껏 작아지며 몸을 낮추게 된다. 이제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그분들의 공로와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우리들의 주변을 돌아보고 지킬 것은 지키고 버릴 것은 과감히 버려야 할 줄 안다. 내가 먼저 있어야 타인도 있겠지만 나라가 따로 있고 내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닐진대 내가 나라를 생각하지 않으면 나를 생각해 줄 나라가 온전할 수 없음을 깊이 깨닫는 6월이 되기 바란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돋아나는 새 순들로 꽃보다도 아름다운 잎새들의 향연을 즐기던 5월이 가고 어느새 6월도 무르익어간다. 현충원의 소복 물결이 우리를 숙연하게 하는 6월을 더는 욕되게 하지 말아야한다. 눈이 번쩍 뜨이는 낭보가 쏟아지는 소식이 듣고 싶어 서둘러 방송을 켜는 그런 날이 빨리 왔으면 얼마나 좋을까?

 

유록의 옷감을 펼쳐 본다. 고운 아기 옷 한 벌을 지어야겠다. 쇼윈도의 그 옷을 쳐다보면서 아이사랑의 마음이 물씬해 진다면 그 얼마나 좋은 일이겠는가. 예로부터 아이는 바라만 봐도 마음이  순해지고 따뜻해지는 법인데 어쩌다가 우리가 요즘 같은 패륜지사를 수시로 듣고 살게 되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유록색을 보면서 그런 악심이 치유받기를 바라본다.

 

백신 접종으로 머지않아 코로나 19의 횡포와 공포로부터 자유로워 질 수 있게 될 것 같다. 예방의 중요성을 재삼 확인하게 된 이번 일을 교훈 삼아 성폭력도 사후약방문만 낼 일이 아니라 사전 예방을 철저히 하는 사고의 대 전환을 이루어 미풍양속을 되찾는 아름다운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아니 기필코 그렇게 해야 한다.

 

오랜 친구인 고객이 검정 수츠를 찾으러 올 시간이 되어간다. 다시 한 번 살펴보고 옷걸이에 걸어둔다. 해마다 6월이면 현충원을 어김없이 다녀오는 친구이다. 특별히 찾아가야 할 가족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렇게 하지 않고는 못 견디는 버릇이라고 그 친구는 조용히 입술위에 손가락을 세운다. 누구는 목숨도 버렸는데 그 정도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일 뿐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래, 우리가 그 분들께 보답하는 것은 나라를 온전하고 굳건하게 잘 지키는 일이다. 누구를 탓하기 전에 우선 각자가 선 자리에서 제 할 일을 다 하고 정직하고 바르게 사는 아주 기초적인 일상을 제대로 하는 것이 애국이고 그것이 뭉치면 안보는 저절로 이루어질 것이다. 초록의 6월을 생각하자 우리는 한없이 성장해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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