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불 재해의 엄청난 시련이 아직도 가시지 않았는데 장마가 다가오니 걱정이다. 보금자리를 잃고 생활이 정착되지 않은 형편이지만 미래를 위해 산불 피해로 꺼멓게 타 버린 흙더미를 다시 손질하면서 조금씩 힘을 찾아가고 있는데 장마철로 들어서니 더 피해가 없도록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
이번 산불 재해에 대한 아낌없는 봉사와 지원에 대한 감사는 잊을 수 없는 보은이다. 전국 각지에서 보낸 따뜻한 성원은 타고 난 우리 민족성, 우리라는 공동체 의식이 이룬 성과다.
옛 우리 조상들은 백팔적덕(百八積德)이라 하여 일 년에 108번 남에게 뭣인가 주는 것으로 덕을 쌓고 그 적덕(積德)에서 낙을 얻는 습속(習俗)이 있었다. 그 옛날 평민들이 덕을 쌓는 일은 아주 미미한 것들이었다. 모두가 어렵고 궁핍한 생활을 이어가다 보니 몸으로 봉사하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부모가 돌볼 여유가 없는 이웃 아이의 헤진 허리춤을 기워 준다든지, 길 가다가 이웃집 댓돌의 널부러진 신발이라도 가지런히 놓아 준다든지, 내 집 앞을 쓸면서 이웃집 앞도 쓸어 주는 정, 덕을 채 쌓지 못한 날 밤에는 먹다 남은 음식을 바가지에 담아 다리 밑에 노숙하는 날달패들에게 갖다주기도 하여 그날그날 덕 쌓는 일을 거르지 않았다고 한다.
이처럼 작은 덕을 쌓는 것으로 마음의 평화를 얻고 우리라는 공동체 의식이 사회적 공감대를 이뤄 힘든 사회를 각박하지 않게 이어가는 사회적 문화가 이어져 왔다. 사람 사는 정을 서로 나누면서 나랏일 하는 사람들의 치열한 경쟁과 권력 다툼을 은근히 무시하며 고개 돌리는 진정한 양반 격인 평민이었다.
권력 쟁취를 위한 온갖 권모술수로 자기모순에 빠지는 줄 모르고 세 치 혀로 말 바꾸기에 능숙한 세력가들에게 현혹되는 평민들도 팍팍한 시대를 개탄하며 백팔적덕은 쌓아갔다. 이번 산불 재해에 보내준 아낌없는 봉사와 지원은 우리 민족의 공동체 의식에서 발로된 아름다운 문화이다.
그 아름다운 문화의 혜택을 듬직하게 입어 새 터전이 하나하나 이루어지고 있으며 산불 재해로 생긴 정신적 폐해(弊害)도 완전히 잊을 수는 없지만, 어느 정도 치유되고 있다. 이렇게 다시 일어서는 기회를 너무 서두르지 말고 치밀한 계획에 따라 새로운 도약의 발판으로 삶의 질 향상이 이루어졌으면 한다.
물론 긴급 복구가 필요한 부분은 지원을 서둘러 이재민들의 생활 안정이 최우선이다. 이와 더불어 앞으로의 안전한 생활 환경 조성에 더욱 심혈을 기울여야 할 뿐 아니라 미래 삶의 질 향상에도 균형을 맞추어야 한다. 이재민들의 심리적 치유와 안정된 생활과 더불어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개발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