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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전 선동 행동대원 마냥 모 교회의 목사는 마치 한 국가의 흥망을 좌우할 수 있는 권한이 자신에게 모두 있다는 듯 편파적인 추임새를 자꾸 넣는다. 팔이 안으로 굽을 일이겠으나 어째 등장할 때마다 불편하다. 한 개인이 하나의 집단을 이렇게 찰지게 욕보이는 사례는 우리 역사를 통틀어 아직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 한 집단이 한 개인으로 인해 연일 이렇게나 오지게 오염되고 망가지고 있음에도 남의 일인 양 침묵하면서 방관하는 집단이 언제 또 있었던가.
옳고 그름의 문제는 정녕 사라져버렸다. 매우 정치적인 봄을 경험하고 있다. 진영의 문제로 대응하기 급급해 국민이 국민을 멱살 잡게 하고 물로 보는 일이 반복되니 몹시 피곤하고 슬슬 짜증이 난다.
이성적이지 못하고 합리적이지 못한 군중들이 위정자들의 선동에 휘둘리고 놀아나는 어리석음에서 깨어나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고 시시비비를 가릴 줄 알게 만드는 것을 계몽이라고 하지 않나. 궤변으로만 귀착되는 계몽령은 개나 줘버리라고 과묵한 청년이 계몽되었다는 자의 머리를 쥐어 박는다.
계엄령은 국가의 긴급 상황 시 군대의 통제를 강화하는 비상사태 법령을 의미한다. 계몽령과 계엄령은 발음이 유사하여 언어적 오해가 아닌 정치적 의도를 가진 의도적인 왜곡으로 느껴진다. 거리 정치에 나선 정치권이 오히려 분열을 부추키며 급기야 진실게임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서로의 생각이 다를 수 있다. 각자가 처해 진 입장과 빼도 박도 못하는 상황에 얽매일 수도 있다. 이런저런 이유와 사정으로 같은 사안을 두고 다른 견해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다양성을 인정하는 민주적 제도를 수용하였다. 그러나 다양성이라는 것은 어떤 것이든 무조건적 수용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익히 보편적으로 알고 있는 상식의 테두리 안에서 서로 대화하고 논쟁할 수 있을 정도는 되어야 다양성으로 인정할 수 있는 것이다.
모두의 봄을 잃어버린 줄도 모르고 동쪽 바다는 잠잠하다. 우리는 그저 평온하고 따뜻한 블루로드의 봄을 맞이하고 싶을 뿐인데 잎새달 초록이 반가워야 할 이 계절에 참으로 속절없고 지리멸렬한 측면들을 응축해서 보여주는 장면들 투성이다. 이미 엎질러진 물, 다시 그릇에 담으려 용 쓰는 모습들에 도무지 답이 보이지 않는다. 국민들마저 정치에 찌들어 사는 꼬락서니가 슬프고 안타깝다.
이 차갑고 어두운 아스팔트 장막을 속히 걷어내 버리고 싶다. 봄은 오고야 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