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3·1독립만세운동의 상징적인 인물인 민족대표 33인을 종교별로 살펴보면, 기독교인 16명, 천도교인 15명, 불교인 2명이다. 이렇게 무려 절반이 기독교인이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이승훈, 이갑성, 길선주, 오화영 목사 등이다.
특히 이승훈 선생은 평양 숭실학교를 설립하고 청년들에게 독립정신을 교육했던 인물로 그의 지도 아래 많은 학생들이 독립운동에 참여했다. 또한 평양, 서울, 안동, 개성 등의 교회들은 독립운동의 중요한 거점이었고. 교회 네트워크를 통해 소식이 빠르게 퍼지면서 전국적으로 만세운동이 확산되었다.
1919년 3월 18일 영덕, 영해에서 시작된 3·18 만세운동은 한강이남 최대 규모의 독립 만세운동이다. 이 거사를 계획하고 위험을 뒤로하고 군중들의 앞에서 의거를 이끈 주동자는 대부분 기독교 목사, 장로, 신자들이다. 당시 3천여 명의 인파가 모였으며, 수일에 걸쳐 진행됐다. 매년 영덕군은 3월 18일 영해 3·1의거탑에서 3·18독립만세운동의 정신을 기념하는 참배식을 거행한다.
이날 참배식에는 영덕군수를 비롯해 영해 3·18독립만세운동 기념사업회 회장, 영덕군의회 의장과 군의원, 경북남부 보훈지청장, 경북도의원 등 매년 백여 명의 지역인사들이 초청을 받고 약 3천여 명의 군민들이 참석했다.
1919년 3·18독립만세 의거 당일에는 애국가와 찬송가을 불렀다. 당시 가장 많이 부른 '찬송가는 580장' 민족의 지도자 독립운동가인 '남궁억 장로님' 의 작사로 "삼천리 반도 금수 강산/ 하나님 주신 동산 이 동산에 할 일 많아/ 사방의 일꾼을 부르네/ 곧 이날에 일가려고 그 누가 대답을 할까/ 일하려가세 일하려가 삼천리 강산 위해/ 하나님 명령 받았으니 반도강산에 일하려 가세" 당시 금지된 곡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기념 행사에는 1919년 3·18의 운동에 주역인 기독교와 유림의 대표는 초청을 받지 못했다.또한 교회 성가대를 초청하여 580장 찬송가를 불러야 하는 것이 3·18기념식에 깊은 의미가 있는 것이다. '3·1정신은 하나님의 주권적 은총이자 성경적 정의 개념의 실천이며 성경적 민족주의의 발현이었다'.
이어 '불의, 독재, 폭력은 받아들일 수 없다' 며 온 나라가 정의·인도·생존·존영에 기초한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지키고, 삼권 분립의 민주정치 체제를 수호해야 하며, 어떤 정치 세력이나 이념을 우상화하는 독재적 발상과 실현은 물리쳐야 한다.
지금 우리나라의 현실은 3·1정신은 어디에도 찾아 볼수가 없다. 기독교인들이 3·1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기독교의 기본 정신과 민족 해방의 가치가 맞닿아 있었기 때문이다. 기독교는 모든 인간이 평등 하다는 가르침을 전하며, 자유와 정의, 사랑을 실천하는 것을 강조한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는 기독교의 교리를 바탕으로, 차별 없는 사회를 구축하기 때문이다. 믿음의 선배들이 펼친 조국 독립을 위한 애국심을 재조명하므로 기독교인들의 신앙을 통한 애국애족의 정신을 되찾아 지역사회에 복음을 전하는 원동력이 되기를 기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