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동
이기 뭐꼬?
우짜다가
만났다 아이가
재밌떠나?
재미는 있는데
알 둥 말 둥 한 기라
좋터나?
좋킨한데
맨날 제자리 곰배 아이가
우얄라꼬?
돌고 돌다 파고 또 파면
봄 한 놈은 안 나오것나
계간 『문장』 여름호 당선작(2023, 북랜드) 이현동의 「시」는 사투리의 묘미를 통해, ‘시가 무엇가?’란 질문을 해학적으로 표현하였다. 한국문학에서 특히, 사투리를 활용한 시는 현대에 와서도 여전히 독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그것은 타향살이에서 느끼는 고향과 향어(鄕語)에서 오는 정서적인 친밀감과 동류의식일 것이다. 사투리는 태중에서 어머니에게 들은 말이란 뜻으로 ‘탯말’이라고도 부르며, 이후로도 새롭게 되살려야 할 모국어의 화신이다. 현대시사에서 방언 활용은 소월과 백석의 서북 방언, 김영랑과 서정주의 서남 방언, 이정록의 중부 방언, 김광협의 제주 방언, 박목월, 상희구의 동남 방언 등 풍부하다.
사투리는 험준한 산맥이나 큰 강, 넓은 삼림(森林), 늪지대, 바다 등의 지리적 장애로, 두 지역 간에 내왕이 불편할 때 가장 일반적으로 생긴다. 산맥에 인접할수록 투박한 거센소리 현상이 강하며, 부드러운 구릉과 들판은 상대적으로 말의 연음 현상이 두드러진다. 우선, 사투리는 맛깔스럽고 말 중에서 가장 원초적이고 자유롭다. 이는 수천 년 그 지형과 기후에 따라 몸과 마음으로 체득한 신체의 언어이자 영혼의 언어다. 한 편의 시에서 사투리를 잘만 활용하면 사물 간의 미세한 감각의 차이를 섬세하게 표현할 수 있다.
이현동의 「시」는 경상도 사투리의 억센 말투와 행간 속의 웃음을 ‘시’의 재료로 활용하였다. 그녀는 연꽃이 피면 풍경이 아름다운 경북 청도 유등지를 끼고 소녀 시절을 보냈다. 지금도 칠월 초순에 ‘군자정君子亭’에 올라 연꽃을 바라보면 분홍 꽃대가 환상적이다. 그녀는 시란 놈을 두고 “이기, 뭐꼬”란 불교의 화두를 던진다. 사실 ‘시’란 물건은 밤낮없이 시인을 고뇌하고 번뇌하게 한다. 시마(詩魔)에 걸리면 밥 굶는 것도 모르고 새벽까지 시작(詩作)에 매달린다. 시는 전생과 현생, 미래생의 탁한 업(業)의 기운을 다 몰아 내준다. “우짜다가” 그녀는 시를 만나서, 그 고생을 하는지 자신도 알 길이 없다. 이제는 숫제, 시를 놓지도 굽지도 못하는 지경까지 와버렸다.
시작(詩作)에 몰두하다 보면, “재미”와 불행 사이를 오가는 묘한 경계가 보인다. “알 둥 말 둥” 머릿속에 시어가 떠올랐다 달아났다 그렇게 장난질을 친다. 안 써질 때는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한 줄도 못 쓰는 것이 시란 놈이다. 하여, 그녀에게 시는 “좋킨한데 / 맨날 제자리 곰배”이다. ‘제자리 곰배’는 ‘제자리 걸음’이란 사투리다. 모든 시인이 명시 한 편 만나려고 죽기 살기로 날밤을 세운다. 처음엔 그저 자신의 시를 읽어만 주어도 좋다고 생각하지만, 시력(詩歷)이 깊어지면, 자신이 쓴 시를 독자가 읽고 팔자가 바뀌기를 소망한다. 그러다가 차츰, ‘내 마음의 위안’을 얻기 위해 시작(詩作)을 하게 된다. 이현동 역시, 열심히 시를 “파고 또 파면 / 봄 한 놈은 안 나오것나”라는, 자위하는 마음에 다다른다.
그렇다. 이처럼 좋은 사투리 시는, 행간의 움직임과 동작에 오묘한 느낌과 감칠맛을 준다. 놀라운 발견보다는 정겨운 풍경을 소재로 독자들을 찾아간다. 자신만의 서정의 아름다운 무늬를 자연스레 드러내는 것이 좋은 시다. 현란한 시어로 세상 사람을 놀라게 하지 않아도 된다. 그저 소박한 사람살이의 이야기를 조곤조곤 풀어낼 뿐이다. 이번 이현동의「시」는 졸박한 시인의 마음을 한 뜸 한 뜸 사투리로 꿰맸다. 그녀 역시 언젠가는 바람의 말을 우리에게 시로 전할 것이다. 행간에서 일어나는 삼라만상의 순간을, 홀연히 시로 들을 날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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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원 시인 |
시집 『시가 걸리는 저녁 풍경』, 『구멍』, 『처녀와 바다』, 『깍지』, 『빠스각 빠스스각』, 시선집 『고흐의 시』, 시 에세이집 『시, 낭송의 옷을 입다』, 평론집 『시에 미치다』, 동시집 『우리 나라 연못 속 친구들』, 『태양 셰프』출간하였으며, 시평론 대담집 『저녁의 詩』를 편저했다.
대구예술상(2015), 고운 최치원문학상 대상(2018), 대구문학상(2018), 영남문학상 수상(2020)을 수상했다. 대구시인협회부회장 역임했으며, 대구문인협회 이사, 한국시인협회원, 대구아동문학회원, 『텃밭시인학교』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