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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유수(流水)와 같다."는 말이 절실하게 와닿는다.
이번에는 영귀대(詠歸臺) 아야기이다. 영귀대(詠歸臺)는 옥계 침수정(枕漱亭) 밑의 납작하고 편편한 바위를 말한다. 영귀(詠歸)라는 말은 논어(論語)의 선진(先進)편에서 빌려온 말이다. 즉 "바람을 쐬고 난 뒤 노래하며 돌아간다네.(風詠而歸)"에서 따와 "영귀대(詠歸臺)"라 이름을 붙인 것이다. 물론 전국의 이름있는 산천 어느 곳치고 영귀대(詠歸臺)란 이름이 없는 곳은 없다.
그렇지만 옥계(玉溪)와 같은 이 아름다운 절경에 와서 그냥 바람만 한번 후딱 쐬고 다시 돌아가서는 잊고 있다간 문득 또 다시 와보고 싶은 곳이 옥계(玉溪)말고 또 어디에 있을까?
어느 유명한 선지자(先知者)는 "세상에서 생각을 갖고 있는 모든 존재는 영원한 방랑자!"라고 하였다. 아마 이곳을 "영귀대(詠歸臺)"라고 이름을 붙인 것은 세사(世事)의 다른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살피다 다시 옥계(玉溪)에 돌아와서는 이곳 옥계를 본 기쁨을 나타내고자하여 "다시 돌아와서는 옥계의 경치에 흥(興)이 일어나 노래하며 돌아간다."라는 의미가 바로 영귀대(詠歸臺)에 라고 이름을 붙인 것은 아닐까?
옥계(玉溪)를 와본 선조들은 이러나 저러나 한 수(首)의 시를 읊으며 돌아갈수 있을 정도로 좋은 경치를 가진 높은 대(臺)라 하여 이곳을 영귀대(詠歸臺)라고 이름이 붙였을 것이다. 근래 한때에는 이곳에서 옥계 음악제(音樂祭)를 열어 옥계의 산신도 위로하고 지나가는 나그네들의 발길도 붙잡은 적이 있지만 이제는 풍악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아래의 무영(舞雩詠)은 무영귀(舞雩詠歸)에서 온 말인데 증자(曾子)의 "저문 봄에 봄옷이 만들어지면 갓을 쓴 대여섯 명과 동자 여섯일곱 명으로 기(沂)에서 목욕하고, 무우(舞雩)에서 바람 쐬고 실를 읊고 돌아오겠습니다."라고 한 것을 인용한 것이다.
다음은 침류재 손성을 선생이 영귀대(詠歸臺)에 대하여 읊은 한 수의 시이다.
홀연히 풍광(風光)에 들었다가 무우영귀(舞雩詠歸)하는데 風光忽入舞雩詠
한 곡조 드문 소리에 축복하고 또 탄식하니 一曲希音祝復戱
가슴 속은 호쾌하여 쌓인 티끌은 없어지고 浩浩胸中無累塵
들과 산의 봄기운은 앞길을 푸르게 만들어준다네. 農山春意翠前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