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 문득 제비꽃을 만나면
꽃의 눈으로 세상을 보리라
처음 피어나는 두근거림으로
숲은 깨어나
뿌리들이 서로 얽혀갈 때
낮잠 달게 자고 일어난 듯
나뭇잎들 서로 따스하게 부비고
어린 단풍나무 하늘로 기지개를 켜지
꽃은 발돋음하여
하늘에 솔방울을 매달면
밤이면 별이 반짝이고
가슴에는 둥근달이 떠오르지.
서정시의 아름다움은 낯선 시의 방향보다 감동과 소통에 무게 중심이 있다. 자신만의 개성적 감각과 체험의 깊이에서 시어를 길어 올린다. 시의 무늬는 저마다 살아온 시간과 추억이 묻어있어 좋다. 시는 바람의 말을 전하는 공간이다. 삼라만상의 찰라의 순간을 어떻게 언어로 교직화 하는지가 관건이다. 사물의 말을 인간의 말로 환원할 때 비로소, 시가 태어난다. 좋은 시는 ‘가장 적은 언어로 가장 울림이 큰 시’로 변주할 때 빛난다. 시는 시적 착상과 발상이 중요하다. 느낌이 좋으면 금방 시적 분위기가 반전된다. 단순하고 심플한 구도에서 시의 요체가 드러난다. 짧은 시 긴 여운이란 말도 있듯, 시는 췌사를 덜어내는 작업이다. 이미지의 범람은 시의 정신을 헤친다. 적확한 시어의 사용은 얼마나 시를 세련되게 하는가. 제때 제 자리에 잘 앉은 시어는 보기만 해도 좋다.
시인 박유진의 산문과 아름다운 시편이 빼곡한 『숲의 기억』(2022, 보민출판사)은, 시와 산문이 참 어울린 책이다. 그 속에 내 눈길을 끈 시는「꽃의 두근거림」이다. 이 시는 행과 단어, 구(句)와 절의 절묘한 리듬으로 연결되어 있다. 한 편의 시는 한 몸으로 이루어진 생명체이다. 또한 이 시는 종결형 (~지)를 통해 시어의 맛과 의미를 살려내고 있다. 말은 반복하면 규칙과 재미가 동시에 생겨난다. 산수화조(山水花鳥)는 전통적인 시와 예술의 소재이다. 이 가운데 특히 한국시사의 장을 펼치게 되면 꽃은 시대 사회의 흐름에 따라 다양한 상징과 은유로 변주된다.
제목인 「꽃의 두근거림」속에서 가장 특이한 시적 표현은 ‘두근거림’이다. 꽃을 의인화하여 실감나게 표현한다. 이런 형상화는 “꽃의 눈으로 세상을” 볼 때 가능하다. 하여, “깊섶” “제비꽃”은 밖의 일들이 궁금하다. 처음 깨어나는 “숲”이 궁금하고, “뿌리들이 서로 얽혀” 사는 이야기가 궁금하고, “낮잠 달게 자고 일어”나는 순간이 궁금한 것이다. 물론 궁금한 것은 그것뿐만 아니다. “나뭇잎들 서로 따스하게” 몸 “부비고” 사는 하루가 궁금하고, “어린 단풍나무”가 “하늘로 기지개를 켜”는 일이 신기하다.
하여, “꽃은 발돋움하여 / 하늘에 솔방울을 매달”고, “밤이면 별이 반짝이고 / 가슴에는 둥근달이 떠오”른다. 이 모든 일은 시인이 ‘꽃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겠다는 상상력이 있기에 가능하다. 근대 이후에 들어와 꽃은 다채로운 색과 은유와 환유의 방식으로 다루어진다. 색은 시의 감정이다. 색은 시간의 말을 공간 속에 새겨 놓은 알레고리allegory이다. 파란색은 차가운 촉감의 메타포metaphor이며, 파랑은 희망의 언어이자 영원을 상징한다. 노랑은 모순의 역설이자, 배반의 색이며 분열의 색이다. 시에서 노랑은 질투이자, 즉흥이며 경고의 색이다.「꽃의 두근거림」속의 ‘제비꽃’의 보라는, 참회의 색이자 죄의 색이다. 하여, 천지만물은 시인의 몸을 빌어, 말(言)의 색깔로 사물과 교접해 문채(文彩)로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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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경북 영덕 구계항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자랐다. 1994년 『문학세계』로 등단, 2017년 매일신문 신춘문예에 동시, 2020년 『문장21』에 평론이 당선되었다. 시집 『시가 걸리는 저녁 풍경』, 『구멍』, 『처녀와 바다』, 『깍지』, 『빠스각 빠스스각』, 시선집 『고흐의 시』, 시 에세이집 『시, 낭송의 옷을 입다』, 평론집 『시에 미치다』, 동시집 『우리 나라 연못 속 친구들』, 『태양 셰프』출간하였으며, 시평론 대담집 『저녁의 詩』를 편저했다. 대구예술상(2015), 고운 최치원문학상 대상(2018), 대구문학상(2018), 영남문학상 수상(2020)을 수상했다. 대구시인협회부회장 역임했으며, 대구문인협회 이사, 한국시인협회원, 대구아동문학회원, 『텃밭시인학교』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