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본 필자는 1945년에 출생한 해방동이다, 당시 독립운동을 하신 분들은 모두 소천 하시고 한 분도 생존하시는 분이 없어 정확한 증언을 듣기는 어렵다.
기록물로만 남아 후대에 알려지면서 세월이 흐르면서 당시의 내용들이 흐려지고 퇴색 되어지기에 여러 자료들을 모아 조사 분석하면서 지금까지 필자가 조사 한 내용들을 요약하여 지면이 허락되면 몇 회로 나누어 연재하여 소개하고자 한다.
본 필자은 1936년에 개교 한 영덕중·고등학교 650쪽 60년사를 1994년에 집필·발간, 1908년에 창립한 영덕읍교회 220쪽 100년 화보집을 2009년에 편집·발간, 1911년 개교한 영덕초등학교 750쪽의 100년사를 2011년 집필·발간, 1949년 12월 영덕교육청 개청 70년 영덕교육사 860쪽을 2020년에 집필·발간하였다.
영덕교육의 역사및 교회 역사 등 여러 방면으로 자료들을 수집 정리하고 집필하였다. 그 동안 조명되지 않았던 사실적 내용과 자료들을 통하여 바르게 후대들에게 알리려는 마음으로 우리 지역의 독립만세운동에 대한 내용을 정리하여본다. 영덕에서 일어난 3월 18일 독립만세운동은 한강 이남에서는 그 규모가 가장 큰 독립운동으로 알려지며 매년 3·18독립운동 행사를 군민의 대행사로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영덕 독립만세운동은 3월 18일 영해 장날 장터에서 약 3,000여 명의 군중이 모여 대규모의 독립 만세운동이 일어난 날이다. 그러므로 대한민국의 3·1독립만세운동에 이어 우리 영덕 지역은 1919년 3월 18일에 일어난 운동이므로 3·18 독립만세 운동이다. 1919년 3월 18일이 영해 장날이였고 장터에서 독립만세운동이 행하여졌다.
그러므로 혹자는 '창터 만세운동'이라고도 한다. 3·18운동은 기독교 지도자인 목사 조사(전도사) 교인 등에 의하여 계획,조직,진행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먼저 이해를 돕기위하여 우리 지역에 1920년대 까지 기독교가 전파된 교회를 순서되로 간략히 요약하여 정리해본다.
여러 자료들을 살펴보면 영덕지역에는 일찍이 미국에서 파견된 선교사들에 의하여 1901년 지품 낙평, 이어서 1903년 축산 화천, 1907년 강구 삼사, 1908년에 영덕읍, 1910년 매정, 오포, 송천, 남정, 원전교회가 창립을 했다.
이로서 영덕에 최초로 창립한 교회는 지품의 낙평교회로 1910년까지는 5개 교회가 창립을 했다. 그 외 1920년까지는 병곡 삼업, 영해교회 등 10여 곳 교회가 개척하면서 창립했다.
* 차시 '영덕지역의 3,18 운동과 가독교'
* 영덕지역에 최초 파견된 선교사: 1910년 Jon Young Corthers 권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