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설
김동원
추웠더냐, 얘야!
모란 신방으로 내려가는 우물 속으로
이별은 찾아온다고 하지 않았더냐
노을로 손목은 왜 그었느냐
물속 피가 번지면
천형이 내린다 하지 않았더냐
옷이라도 입혀 보낼걸,
왜 그리 모란을 따라갔느냐, 얘야!
〈어떤 시는 첫 줄이 먼저 오고 어떤 시는 과정을 지우려는 듯 마지막 문장이 먼저 온다. 어떤 언어들은 지독한 물질성으로 내 몸에 덩이째 달라붙어 꾸역꾸역 냄새를 피우며 얼룩을 남기지만 끝내 시가 되어주지는 못한다. (…) 원하건 원하지 않건 언어는 사물과 부딪히면서 휘어지고 떨어지고 솟아오르기를 반복한다. 시는 나도 모르게 다른 곳으로 흘러간다. 의도치 않았는데 아주 멀리 나아가기도 하고 주변을 맴돌며 살을 파고 들거나 다른 몸으로 건너뛰기도 한다. 어느 순간부터 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 나의 무의식이 작동해 시를 끌고 간다. 무의식은 타자화된 나의 몸이겠다. 그 속에는 당연히 내 삶의 시간들이 중첩해 있다. 내가 아니라 언어가 움직인다. ― 류인서 / ‘떠도는 현재시現在詩, 시’ 중에서〉
왜 그날 밤 그녀가 꿈속에서 〈노을로 손목〉을 그었는지, 나는 아직도 그 연유를 모른다. 천기누설을 들었으리라. 이따금 화마畵魔에 들리어 귀신이 펼친 귀경을 그린다고 하였다. 시의 형식을 들춰 업고 내용을 폭로하고 있었다. 은밀한 속삭임으로 매일 밤 내 꿈에 그녀는 은유로 속삭였다. 「누설」은 그녀와 행간 사이 은폐된 카르마Karma다. 우물 속인지 우물 밖인지, 그녀는 화폭 앞에서 춥다고 하였다. 불편한 전생의 업業을 통해 바라본 그녀의 방은 〈모란 신방〉이었다. 나는 ‘사랑’에 미치면 〈천형이 내린다〉고 일러 주었다. 끊지 못한 욕망에 괴로워하며 옷도 입지 않은 채, 바들바들 현생의 붓을 들고 떨고 있었다. 하도 안쓰러워 천의天衣를 집어 그녀에게로 다가가는 순간, 그녀는 자신이 그린 「설죽도雪竹圖」속으로 숨어 들어가 버렸다.
‘한 점을 긋는다’는 것은 만물의 심장 떨림을 직관한다는 의미다. 곧바로 사물 속으로 치고 들어가 화가의 심장과 화폭 속 오브제들이 한 몸이 된다는 뜻이다. 반드시 하늘은 당신의 뜻을 우주 속에 풀어 놓아, 인간으로 하여금 그 이치를 깨닫게 하는 고통을 준다. 이런 천명을 받아내는 천형이야말로, 예술가의 소명이다. 무의식은 하나의 거대한 붓이다. 은하수는 그대로가 달빛 넘어 흐르는 색체이다. 해를 둘러싼 태양계들의 아름다운 춤의 곡선도 좋거니와, 밤하늘 수천 개의 별이 천계 가득 뿌려져 움직이는 점과 선은, 멋진 무無의 드로잉이다. 난 언제나 그녀의 그림을 감상할 때 ‘화폭 속의 숨소리’를 제일 먼저 듣는다. ‘들숨’은 생명의 앞문이요, ‘날숨’은 죽음의 뒷문이기 때문이다. 2010년 4월경의 작품, 웨이하이 시절 화가 묵연의 빼어난 수작 「설죽도雪竹圖」(개인소장)를 처음 보았을 때 숨이 멎는 듯했다. 초승달의 처연함도 애절하지만, 모진 시베리아 북풍한설에 내몰린 어미 대죽과 어린 죽순의 살아남으려는, 그 ‘버팀’의 슬픈 곡선 미학은 참척의 아픔이 느껴졌다. 싸늘한 겨울 눈보라는 사랑한 이의 주검을 끌어안고 통곡하는 소복한 여인의 흐느낌처럼 들렸다. 하여 그녀의 댓잎의 ‘휨’은 무형의 그림자를 이루었다. 화필畫筆은 귀鬼인양 흰 눈에 휘감겨 이루 형언 할 길 없는 묘음을 만들었다. 보는 이의 가슴 무늬에 따라, 이별의 사랑과 격정의 불길이 점묘처럼 타올라 몸부림치고 있었다.
고인들은 〈대나무 그림을 그릴 때, 처음 눈으로 본 대(竹) 모양을 안중지죽(眼中之竹)이라 했다. 실제의 객관적 세계에 존재하고 있는 대상으로서 대나무를 있는 그대로 보고 느낀 것을 의미한다. 흉중지죽(胸中之竹)은 객관적 대상이 마음에서 형상화되어 주관적으로 받아들여진 대상을 의미한다. 이것은 예술가에 의하여 예술적으로 변용된 이미지화된 대나무이다. 수중지죽(手中之竹)이란 무엇일까? 이는 예술가의 공력(功力)과 기교를 통해 표현된 대나무를 말한다. 즉 객관적 대상이 주관을 통하여 변용되고 다시 예술적 기교를 통하여 표현되는 과정이다. 따라서 흉중지죽과 수중지죽은 대상의 단순 모방이 아니라 예술정신의 표현이다.〉(김종헌,『추사를 넘어』)
「雪竹圖설죽도」는 흉중지죽이요, 수중지죽이다. 이국 만 리 먼 타국에서 느낀 화가 묵연의 서늘하고 아픈, 상한 곳에 흐르는 흉중 속에 고인 진물의 먹색이었다. 그림 속 매서운 찬바람과 마구 흩뿌려 몸부림치는 눈보라와 살려고 발버둥치는 대죽의 휘임과 묵기 빠진 초승달은 압권이다. 제각각의 오브제는 서로가 서로를 한없는 측은지심의 인연 밧줄로 화폭 가득 팽팽히 끌어당기고 있다. 겨울 한밤중 허허벌판에 내몰린 저 대죽과 죽순을 보라. 무엇에 지핀 듯 화가가 거칠게 쭉쭉 그어나간 필선은, 설한풍을 온몸으로 껴안은 대죽의 마디 마디의 공명처럼 적요하다.「설죽도雪竹圖」는 수묵화가 다다를 수 있는 청록과 먹의 오체색이 뒤섞여 만든 붓질의 백미다. 먹색이 내는 온갖 담담한 색은 무위의 몸짓이다. 명작은 손가락으로 바위를 뚫는 정성으로만 태어난다. 불같은 정열과 광적인 몰입이야말로, 위대한 예술가의 노정이다. 작가는 거짓을 말할 수 있어도 작품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좋은 그림은 화폭 가득 바람 소리가 들려야 하고, 붓질은 끝났으나 그 뜻만은 무량하여야 한다. 오브제마다 살아 움직이는 신령스런 영감으로 가득 차야하며, 언제나 색은, 그 너머의 초월을 꿈꾼다. 화가 묵연의 대나무는 무념보단 생의 끈질긴 ‘견딤’을, 무상보단 ‘어린 죽순’의 핏줄에 더 무게 중심이 가 있다. 마치 시장 바닥 어린 새끼를 옆구리에 끼고 세파를 견디는 겨울 좌판의 어미처럼, 등뼈 휜 대죽을 보고 있으면, 시베리아 한파의 혹독한 고달픈 생의 비의가 화폭 가득 환청으로 휘잉~휘잉 들린다.
1962년 경북 영덕 출생. 대구에서 성장.
1994년『문학세계』 ‘시 부문’ 신인상 수상으로 등단
1997년 제 1시집 『시가 걸리는 저녁 풍경』 출간
2002년 제 2시집 『구멍』 출간
2004년 제 3시집 『처녀와 바다』 출간
2007년 동시집 『우리 나라 연못 속 친구들』 출간
2011년 시 에세이집 『시, 낭송의 옷을 입다』 출간
2014년 평론집 『시에 미치다』 출간
2015년 대구예술상 수상
2016년 제 4시집 『깍지』 출간
2017년 매일신문 신춘문예동시당선
2017년 동시집 『태양 셰프』 출간
2018년 시 대담 평론집 『저녁의 詩』 편저
2018년 대구문학상, 최치원문학상 대상 수상.
2020년 시선집 『고흐의 시』 출간
계간지 『문장21』 봄호 평론 당선
한국시인협회, 대구시인협회 부회장. 대구문인협회시분과위원장. 『텃밭시인학교』 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