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동해의 샘많은 햇님이 옥계를 휘저으면 옥계(玉溪)의 얼음 녹은 물이 이 못(潭)에까지 이르게 되고 아홉 마리의 용(龍)들은 마치 제철을 만난 것처럼 비늘과 가죽에 윤기(潤氣)를 더하며 서로 가려운 곳을 긁어 주듯 뒤엉키며 용트림을 하는데 혹 바람이 불어 물결이 일어나 바위벽에 부딪쳐 일렁거리며 물거품을 일으키는데 마치 아홉 마리의 용(龍)들이 비늘을 번쩍이며 하늘 높이 날아오르는 것 같기도 하고 혹은 목구멍 깊숙이 감춰두었던 여의주(如意珠)를 서로 던지며 희롱을 하는 것 같기도 하다.
이러면 겨울 동안 용이 잠든 구룡담 못 속에서 용 대신에 용 트럼을 하며 천방지축 설쳐 되던 미꾸라지는 이런 소동에 놀라 봄이 되면 하늘로 튀어 올라서는 구름 위에 숨어 못 속을 내려다보고 있다가 여름 소나기가 내릴 때 소나기를 타고 몰래 내려와 구룡담(九龍潭)의 엎어진 바위 밑으로 소리조차 없이 몰래 숨어들어 가을이 지나가고 겨울이 닥치기를 손꼽아 기다리며 뱃가죽이 노랗게 살을 찌운다고 한다.
대개 구룡담(九龍潭)의 구룡(九龍)은 물을 다스리는 아홉 마리의 용(龍)을 말한다. 구룡담(九龍潭)이 있는 대서천(大西川)은 낙동정맥(洛東正脈)이 그렇듯이 서쪽은 높고 동쪽은 급경사를 이르고 있는 지형 관계로 비가 조금이라도 심하게 오면 주위의 모든 것을 동해바다 용왕님에게 갖다 바칠 정도로 급하게 흐르다가 비가 그치면 어느새 온순한 양처럼 말없이 흐르는 특징을 갖고 있다.
이런 것을 알고 있는 옥계(玉溪)의 산신(山神)들이 옥계(玉溪) 37경(景) 안에 구룡담(九龍潭)을 만들어 대서천(大西川) 한가운데에 갖다 둔 것은 아마 큰 홍수가 일어나도 이 구룡(九龍)들이 물을 잘 다스려 달산과 영덕에 아무런 피해가 없도록 하고 옥계(玉溪) 37경(景)을 영원히 그대로 보존시키고자 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구룡담(九龍潭)에는 언제부터인가는 여름이면 이곳저곳에서 세워진 텐트의 빨갛고 노란, 까맣고 파란(赤黃黑靑)색들이 용트림을 하고 있다. 심지어는 구룡(九龍)이 꼬리와 머리를 담구고 있는 못 안에까지 어른들 물놀이 용품들이 이리저리 굴러다니며 가득 차는데 혹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한낮이면 마치 21세기의 새로운 용(龍)들이 탄생한 것처럼 구룡담(九龍潭) 전체가 무지개 색의 장난감 용(龍)들의 놀이터가 된다.
예전부터 이곳 주위 마을에 전하는 이야기로는 "예전 호랑이 담배 피우던 어는 여름에 이곳 옥계에 대홍수가 발생하여 구룡담에 있던 아홉 마리 용들이 강구 앞의 동해에까지 휩쓸려 갔는데 더 이상 떠내려가지 않으려고 길지도 않는 발톱을 세우며 물쌀을 가로질러 옥계 구룡담으로 돌아오려고 했는데 흐르는 물살이 얼마나 드세었는지 장기곳을 지나 정신없이 헤메다 잠시 숨을 쉬던 곳이 장기곳에서 남쪽 어디 쯤이라고 하였다."라 하는데 내 생각에는 아마 구룡포가 아닌가 하고는 짐작을 해본다. 구룡포란 지명이 아홉 마리 용과 관련있는 지명으로 보이니 큰 홍수로 동해바다까지 흘러간 용이라면 구룡담의 아홉 마리 용밖에 더 이상 wlaq작할 만 것이 없지 않은가? 그래서 그런 지명이 붙어 오늘까지 이른 것이 아닌가한다. 달산 구룡담의 용이 잠시 머물렀던 정경을 찍어둔 사진(寫眞)이 없으니 참말인지 거짓말인지 참 헷갈리지만..... 가능성은 있는 것이 아닐까?
어찌 되었든지 간에 구룡담(九龍潭)은 1년 4계절 어느 하루도 빠짐없이 예나 지금이나 용(龍)들이 살고 있다.
다음은 구룡담(九龍潭)을 읊은 침류재(枕流齋) 손성을(孫星乙)선생의 한 수의 시이다.
돌에 새겨진 꼬리의 흔적은 서로 굽히고 편듯한데 石着尾痕互屈伸
물결이 움직일 땐 문득 진짜 비늘이 번쩍이는 듯하지만 波中活動便眞鱗
변화무상(變化無常)은 못해도 무용(無用)함은 알고 있으니 未能變化知無用
초야에 있으며 이견대인(利見大人)의 점괘나 펼쳐야지 在野惟占利見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