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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기고

15경(景)_ 병풍암(屛風巖)

고향신문 기자 입력 2024.06.28 10:34 수정 2024.06.28 10:37

영덕의 명승절경 옥계 37경을 찾아서(16)
| 영덕문화원 이완섭 사무국장

병풍암(屛風巖)은 침수정(枕漱亭) 전면 왼쪽에서 오른쪽에 이르는 수십 길(丈)의 바위가 마치 병풍처럼 펼쳐져 있는 절벽을 말한다. 

 

병풍(屛風)은 예전부터 은폐하고 가리는 장막(帳幕)의 역할로 많이 사용하였는데 예전에 못살고 가난한 집에도 한폭의 병풍은 있어 늘 비싸고 좋은 것은 이 병풍으로 가려두곤 하였으니 철없을 땐 늘 병풍 뒤엔 무엇있는 지를 궁금해하였다. 마치 옥계(玉溪)의 이 병품암(屛風巖)도 조물주가 우리의 궁금증을 자아내기 위하여 이렇게 24폭의 바위 병풍(屛風)을 공들여 만들어 이곳에 둘러쳐 둔 것은 아닐까? 

 

병풍암(屛風巖)을 자세히 보면 조금 고급스럽고 우아하도록 청룡(靑龍)과 백호(白虎), 주작(朱雀)과 현무(玄武)를 그려 새겨 넣은 것 같은 바위들이 죽 펼쳐져 있어 이 병풍암(屛風巖)으로 침수정(枕漱亭)을 자연의 외풍(外風), 사람으로부터의 외풍(外風)으로부터 보호하려고 한 것은 아닐까? 또한 병풍(屛風)에는 교훈이 될 글귀나 옛이야기 등을 써서 멋있고 우아하게 꾸미기도 하는데 아마 이곳 병풍암(屛風巖)의 곳곳에도 우리가 모를 글이 적혀있을 것 같기도 하다. 

 

상상하기로는 옥계(玉溪)가 이곳에 생긴 이래로 경주와 영덕에서 일어났던 모든 일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지 않을까 한다. 모르긴 몰라도 "언젠가 이런 기록들이 세상에 드러나게 되면 영덕(盈德)과 경주의 역사를 새롭게 써야 할 것이다."라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기는 하다. 

 

아마 이 역사의 창고가 열리는 날에는 양설령에 있는 달로산성(達老山城)을 서로 차지하기 위하여 치열하게 싸웠던 신라와 고구려의 이야기로부터 조선시대 초기에 영해 축산에서 왜구를 무찌르기 위해 달로산성을 고쳐 쌓았던 최윤덕(崔潤德)장군의 이야기, 나아가 한말(韓末) 산남의진(山南義陣)의 의병대장이었던 정환직(鄭煥直), 정용기(鄭鏞基), 최세윤(崔世允) 대장들의 활동과 영릉의진(寧陵義陣)의 신돌석(申乭石)장군의 용맹스런 활약상이 새롭게 드러나게 되어 영덕은 역사와 문화와 더불어 호국 의병의 고장으로 새롭게 각광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조물주는 단순히 외풍(外風)으로부터 침수정(枕漱亭)을 보호하기 위해 병풍암(屛風巖)을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침수정이 생기기 전에 병풍암(屛風巖)을 만들어 이러한 모든 것을 기록하려 하였던 것은 아니었을까? 참으로 옥계(玉溪)는 곳곳마다 전설과 이야기를 깊이 갈무리하고 있다. 거기다 곳곳이 절경(絶景)이다. 

 

다음은 병풍암(屛風巖)을 읊은 손성을(孫星乙) 선생의 시 한 수이다.  


오래된 병풍이 크게 감춰져 있듯 몇 폭으로 겹쳐있는데      大隱古屛幾疊寬

인생은 가을밤의 꿈인데 보배스런 거문고나 타볼까           一生秋夢寶琴彈

바위와 나무들은 차가워 산사람은 미덥지 못한데              雲根樹寒山人僭

병풍암이 바람을 막아 차가운 기운(寒氣)을 떨쳐주네.         只障巖風不得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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